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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엘킨스, 『미술사는 글로발 한 것인가?』, 2006 James Elkins, Is Art History Global?, 2006

고동연 (한예종 시간 강사)

 

책의 소개에 앞서

  비엔날레나 미술관을 통한 국제 교류가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시점에서 글로벌리즘은 국 내외 미술계에서 주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1) 최근 국내에서『속도의 예술』(2008) 이라는 국제 비엔날레에 대한 책이, 국외에서는 독일의 KM에서 발간된 『글로벌 미술과 미술관 (Global Art and the Museum)』(2006),『글로벌 미술세계(The Global Art World)』 (2009) 등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주로 이들 책들이 전시 기획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에 비하여『미술사는 글로발한 것인가?』(2006)는 글로벌을 미술사, 미술사 교육과 연관시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책의 서두에서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Art Institute of Chicago)의 교수이자 편집자인 제임스 엘킨스(James Elkins)는 서구 유럽이나 북미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해 온 미술사의 개념은 계몽주의 이후 발전된 서구식 이성주의의 한 결과이며 전통적인 미술사는 그 영향력을 잃은 지 오래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미술사의 전 세계적인 실행화(A worldwide practice of art history)가 현재 활발 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엘킨스의 설명이다.(4)『미술사는 글로벌 한 것인가?』는 미 술사가 더욱 국제적으로 활성화되고 타 문화권들 간의 교류를 부추기면서 전통적인 미술사 를 쇄신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또한 이를 위하여 필요한 사회적, 경제적, 학문적 기반과 걸림돌에 해당하는 요소들을 토론의 형식을 통해서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엘킨스는 정확하게 글로발한 스케일의 미술사가 어떤 것인지 정의하고 있지는 않다. 대신 각국의 미술사 연구 상황이나 연구 범위, 텍스트의 개발 상태, 그리고 교육 환경의 예를 들 어 다양한 미술사의 존재 양태와 역할을 짚어 간다. 과연 미술사란 무엇인가? 미술사란 서 구에서 주로 행해졌던 학문적 영역인가? 만약 비서구 사회에서는 다른 형태의 연구나 영역 이 존재한다면 서구의 미술사와는 어떠한 관계에 놓이게 되는가? 미술사의 글로발화는 서구 의 미술사를 비서구 사회가 습득하고 모방하는 과정인가 혹은 서구 미술사를 상대화 시킬 수 있을 만큼 획기적인 것인가? 또한 미술사의 지역적인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공용어로서 의 영어는 미술사의 글로발화를 위하여 과연 긍정적인 것인가, 부정적인 것인가? 나아가서 국제화 시대의 미술사는 총체적인 담론을 생성해 낼 수 있는가? 그 결과로 우리는 어떠한 거대 담론, 즉 나레티브를 새로운 세대에서 전수하여야 하는가?

  미술사에서 국제적인 문화교류와 서구의 우월적인 시점은 이미 19세기 원시주의에 대한 논란을 필두로 수차례 소개되고 이론화 되어 왔다.2) 그러나『미술사는 글로벌 한 것인가?』의 주요 관심사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전통적인 미술사와 비서구적인 미술사의 방법론 사이의 접합점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또한 30명의 세계 각국 연구가들의 견해를 담은 장, ‘평가(Assessment)’에서 미술사 연구나 교육에 대한 경험담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남미나 아프리카의 정치적으로 부자유한 상태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안드레 아 지운타(Andre Giunta), 치카 오케케-아귤루(Chika Okeke-Agulu), 프랑스인으로 중국 미술사를 홍콩에서 가르치는 프랭크 비네롱(Frank Vigneron)의 발제문은 미술사 연구과정 에서 드러나게 되는 문화적인 차이점에 대하여 실제 경험을 토대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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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로벌리즘’은 국제화, 세계화, 국제적인 문화 교류와 함께 거의 구분 되지 않은 상태에 서 거의 남용되고 있는 단어 중의 하나이다. ‘글로벌리즘’은 그 정확한 의미가 규정되어 있지 않는데다가 문화 전반에서 미국식 대중문화, 정치적으로는 방관주의 (Neo-Liberalism)로 번역되며 미국식 제국주의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따라서 글로벌리즘 이현대미술사와연관이된다는것에대하여의구심을가질수있다. 2) 1920년대 프랑스의 대표적인 형식주의 미술사가에 속하는 앙리 포시 앙은 일찍이 일본 미술사와 서구 미술사간의 연결점을 찾으려 노력하였고 일본의 오카쿠에... 등도. 마찬가지로 일본의... 은 식민지적인 사관으로 비판을 받았으나 한 바 있다.

 

책의 저자와 구성

『미술사는 글로벌 한 것인가?』는 영국의 유명한 인문과학 출판사인 러트리지 (Routledge)가 2005년부터 2008년에 이르기까지 발간한 ‘아트 세미나’ 시리즈 7권중의 세 번째로 발간되었다. ‘아트 세미나’는 실제로 대학교에서 열린 학자들의 대담 형식의 세미나 를 녹취한 형식으로 책을 엮음으로써 학자들이 열띤 논쟁을 벌이면서 반대 의견을 내는 과 정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VI)『미술사는 글로벌 한 것인가?』의 목차도 학회나 세미나의 형식을 연상시킨다. 엘킨스의 서론은 학회에서 주요 쟁점을 던져주는 개회 사에 해당하고, ‘출발점(Starting Point)’은 일종의 주요 발제문, ‘아트 세미나(Art Seminar)’ 는 파넬 토론, 그리고 ‘평가(Assessment)’는 결론, 혹은 청중들의 질의 평가문에 해당한다 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학술적인 논지를 독자적으로 발전시키는 일반적인 논고들의 모음집 과는 달리 『미술사는...』토론 과정 자체를 실은 보고서의 형식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술비평 무엇이 문제인가(What Happened to Art Criticism?)』(2003)로 잘 알려진 책의 편집자 엘킨스는 미술 이론이나 비평의 주요 쟁점들을 재치 있으면서도 신랄하게 재해 석하는 것으로 평판이 나 있다. 엘킨스는 서장에서 발제문을 요약해서 소개한다기 보다는 강연자들이나 청중들이 고려해야 할 주요 질문들을 정리해서 던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3) 이러한 방식은 이미 그가 미술비평과 연관된 책들에서 여러 차례 사용하여 온 것으로 미술 사와 글로벌리즘과 연관하여 그는 미술사라는 정의나 존립이 불완전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하여 다섯 개의 명제들을 내걸고 있다. “학문이자 대학에서 학과로 규정된 미술사는 북미와 서구 유럽에 대부분 존재한다”든지 “미술사는 국가나 지역의 정체성과 깊 게 연루되어 있다”든지 혹은 “미술사는 현재 이미지 연구나 시각문화 연구로 분해 흡수되고 있다” 등은 그가 일차로 내건 명제들이다. (5-14) 엘킨스는 곧 이어 전혀 반대의 주장을 내 놓게 되는데 이차로 제시한 항목들은 최근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술사가 전통적인 영역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술사가 아직도 “전통적인 정통 캐논을 지키고 있다”던 지 “안정된 담론을 지니고 있다”던지 “서구의 개념적인 도식을 따른다”던지 등의 항목은 미 술사가 아직도 전통적인 연구의 범위와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반론하기 위한 것이다. (14-20)

  이와 같이 미술사의 전통적인 정의에 대하여 부정과 긍정의 태도를 오가고 있는 엘킨스는 미술사가 적어도 서구 유럽과 북미 중심의 사고로부터 기인하고 있다는 측면에 더 비중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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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가... 미술비평에서도 한편으로는 현 미술비평의 상황을... 하지만 동시에 미술비평이 이 제 더 이상 효용성을 지니지 않는다는 상당히 냉소적인 시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마찬가 지 맥락에서 이번 책 또한 단순히 현대미술에서 비서구적인 현대미술을 다루기 어렵게 된 상황뿐 아니라

 

다시 말해서 미술사의 글로발화는 우선적으로 전통적인 서구 미술사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현상을 가리킨다. (22)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미술사적 방법론이나 해석 등이 타문화와 만나면서 변화를 가져오게 되고 이것이 긍정적인 의미에서 글로발화된 미술사라고 할 수 있다.

  ‘출발점(Starting Point)’에서 기조 발제를 맡은 미술사가들은 대부분 엘킨스가 주장한 바 와 같이 전통적인 미술사가 서구 중심적인 사고의 산물이라는 데에는 동의한다.4) 그러나 비서구권에서 온 미술사가들은 서구권에서 유입된 전통적인 미술사의 방법론이나 연구 방식 이 글로발화를 거치면서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거치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 반응들을 내 놓는다. 대표적으로 남미의 미술사가 안드레아 지운타는 미술사라는 학문을 가능하게 하는 제반적인 상황이 남미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라고 설명한다. 자료를 수집 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물론이고 남미의 정치적인 상황들은 미술사 연구에 있어서 학문 적인 독립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30-32) 결과적으로 미술사는 거대한 역사적인 발전 단계를 상정하거나 서구 유럽에서나 북미에서와 같이 깊이 있는 담론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지엽적인 문헌 연구에 그치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지운타의 주장이다. 따라서 그는 서구의 상황에 근거하여 미술사의 글로벌리즘을 논의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한 다.(37)

  미술사가 글로발화되는 데에 있어 또 다른 걸릴돌은 번역과 해석의 문제이다. 즉, 서로 다른문화에속한미술작품들을비교연구할때각각의특수한미학적개념이나용어들사 이에 공통점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와 연관하여 기조 발제에 나선 미국의 엘킨스와 독일의 프리드리히 테자-바흐(Friedrich Teja-Bach)는 2004년에 출판된 버지니아 대학의 데이비드 서머스의 『진정한 공간들(Real Spaces: World Art History and the Rise of Western Modernism)』(2003)을 논쟁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서머스는 저서에서 형태나 양식사가 아니라 공간이라는 동일한 개념에 의거하여 서로 다른 미술사나 문화상에 등장한 예술이나 시각 경험들을 비교 연구한 것이다. 그는 분열(fracture), 장소(place), 공간의 점 유(The Appropriation of Centre)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구석기 시대의 공간개념부터 르네 상스, 중국, 프랑스의 공간 개념의 예들을 비교 분석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엘킨스는 서구 에서조차도 공간이라는 개념은 르네상스 이후에 확립되기 시작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41-43) 테자-바흐는 서머스의 방법론이 미술사의 중요한 쟁점인 역사성을 간과하고 있다 고주장하면서특히타자화된문화를일종의정체적인고정된습성,즉오랜시간정체된 것(longue durée),으로 규정해 버리고 반론의 여지를 박탈할 위험을 지닌다고 경고한다. (79)

  반면, 체코 공화국에서 중국 미술사를 연구하는 큐레이터이자 미술사인 라디슬라브 케스 너(Ladislave Kesner)는 서구 미술과 중국 미술의 개념적인 차이에 주목한다. 케스너는 중 국 미술의 경우 전통적인 서양 미술사의 양식론적인 구분과는 달리 전통적으로 회귀, 다정, 기 등의 전혀 다른 분류에 근거하여 미술의 변천을 설명하여 왔으며 작품의 독창성이나 작 가의 개인적인 예술적 성취도보다는 일종의 유사성 위주로 분류가 주어졌다고 주장한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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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아메리카 대륙을 대표해서 아르헨티나 출신의 미술사가 안드레아 지운타가 북미를 대표 해서 제임스 엘킨스가, 유럽을 대표해서 독일의 프리드리히 테자 바하, 그리고 마지막으 로 중국 미술사가이자 동유럽의 현황을 대변하기 위하여 레디슬라브 케스너 등이다. 이 저자들에게 공통된 관심사는 과연 월드 미술사라고 명명된 글로발한 미술사가 가능한가의 문제이다.

5) 게다가 케스트너에 따르면 비서구권의 미술관들은 타 문화에 대한 관심이나 전문성이 실제적으로 턱없이 부족 한 상태이며 특히 국제화 시대에 지역의 국립 미술관과 같은 정부의 문화 기관들은 활발한 교류보다는 자국 의 미술을 알리는데 더욱 주력하는 국수적인 성향을 강하게 지닌다.

 

이것은 서구 미술사에서의 주로 원인과 결과, 영향관계에 대한 분석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작품을 설명하고 분류해 온 것과는 전혀 상이한 접근방법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케스너도 서머스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공간을 통하여 중국인과 서구인의 인식론에 있어 공통점을 찾 으려는 노력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92-93)

  그렇다고 해서 다른 문화권이나 사회에 존재하는 미학적인 차이들이 미술사의 글로발화에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엘킨스, 테자-바흐, 그리고 케스트너는 바로 지역적 인차이점을발견하게되는것이글로벌적인시각을지니게되는첫걸음에해당한다고설 명한다. 테자-바흐에 따르면 글로벌 미술사란 공통적인 문화적 요소만큼이나 서로 다른 요 소나 요인들을 발견해 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79) 또한 케스트너는 서머스의 시도에서와 유사하거나 공통적인 시각을 가지고 서로 다른 문화를 바라봄으로써 전통적인 미술사에 내 재하고 있는 서구 중심적인 사고들을 상대화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 다.(104)

 

Art Seminar

  기조 발제를 통해서 드러난 주요 쟁점들이나 시각의 차이는 세미나와 평가를 통해서 반복 된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미술사가들은 미술사 연구를 둘러싼 서구권과 비서구권 사이 의 연구 환경이나 언어, 개념적 차이를 들어서 미술사의 국제화에 대하여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미권에서 온 미술사가들은 전통적인 (서구식) 미술사가 타 문 화들간의교류를통하여변모할수있다는기대를저버리지않는듯이보인다.

  2005년도에 열린 세미나를 기록한 ‘아트 세미나’에는 기조 발제를 담당한 지운타, 엘킨 스, 테자-바흐, 케스너 이외에 아프리카의 산드라 클로퍼와 미국의 데이비드 서머스가 참여 하였다. 미술사의 글로발화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쟁점중의 하나는 미술사의 주요 서 적이나 담론들이 비서구 지역에 퍼져 나가는 다양한 경로와 수용의 문제이다. 엘킨스나 데 이비드 서머스와 같은 학자들은 미술사에서 더 이상 효용성이 없어 보이는 곰브리치의『미 술사의 이야기(The Stories of Art)』와 같은 식의 나레티브는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 다.(127)6) 이에 반하여 남미의 지운타나 아프리카의 클로퍼는 아직도 서구의 미술사가 맹 위를 떨치거나 “한물간” 미술사의 담론들이 아직도 비서구권에 유입되고 있는 중이라고 설 명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1990년대에 볼플린의 형식사가 새롭게 번역, 소개되었는데 세미나 참여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중국의 미술사가 서구의 미술사를 ‘추격’하고 있다고 해 야 할지 중국 미술사학계가 볼플린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수용할 것으로 기대해야 할지 토론을 벌인다.7)

  하지만 세미나를 통해서 드러나게 되는 중요한 교훈은 주어진 지역의 정치적, 사회적인 상황과 여건, 그리고 독자층에 대한 이해를 갖지 않고는 미술사의 글로벌화가 지닌 의의를 논의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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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태국의 현대미술(Modern Art in Thailand)』이나 스티븐 맨스바흐(Steven Mansbach) 의『동부 유럽에서의 현대미술(Modern Art in Eastern Europe)』는 서구 미술사의 양식 론적인 방법론에 근거하여 지역의 미술사를 저술한 예에 해당한다. (135)

7) 지운타는 늦음(belateness)라는 단어에 강한 어조로 비난하면서 결국 이와 같은 생각은 반드시, 혹은 정통적으로 전수되어야 할 생각이 단순히 시기적으로만 늦게 등장한 것을 알리게 된다고 주장한다.(122) 이에 반해서 데이비드 서머스는 볼플린의 미술사야 말로 서구의 연구가들이나 특히 학생들에게 이제는 더 이상 익혀지지 않으며 문제의 미술사적 인 방법론으로 기억된다는 것이다. (125)

 

그러나 글로발화를 외치는 미술사가들도 특정한 미술이나 미 술적인 비평이 수용되고 퍼져가는 서로 다른 지역들의 특수한 상황들에 대해서는 모두 알기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비서구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통적인 서구식 미술사의 수용과 연 구 현황, 그리고 가능한 독자층에 대한 정보나 연구는 이제까지 미술사에서 자주 다루어져 온 연구 소재들이 아니다. 실제로 많은 비서구권이나 심지어 서구권의 미술사 교육들이 그 다지 곰브리치의 미술사의 이야기나 양식사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들을 발 견하게되는데보다현실적으로통용될수있는대안적인미술사를만들어내는것이이론 적으로도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정확성을 높인다고 하여도 타 문화의 개념 을 전통적인 미술사에서 인용함으로써 시기적으로 다른 개념들과 양식들이 혼재되어 생겨나 는 중대한 미술사적 오류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172) 테자-바흐가 질문하는 바와 같 이 “우리가 얼마나 소통을 위하여 이 분야를 개방하여야 하고” 이를 통해서 어떠한 측면에 서 미술사의 특수성을 잃게 되는지에 대하여 다시금 반문해 보게 된다.(133)

 

평가

  평가의 장에는 세계 각국에서 30명의 미술사가나 연구자, 큐레이터들이 글로벌화된 미술 사의 주요 요건들에 해당하는 글로벌적인 미술사 연구과 교육 여건의 확충, 주요 서구권과 비서구권이 공유할만한 텍스트들의 확충, 언어나 번역의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소견을 밝히 고 있다.(298)8) 그중에서도 특히 남미, 아프리카, 아랍, 동북아시아 문화권에서 국내의 지 역적인 상황과 수입되거나 세계에서 대변되는 ‘비서구’ 문화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차이점 을 보여 왔는지를 다루는 발제문들이 눈을 끈다.

  남미의 안드레아 지운타, 아랍(이란) 독일의 매튜 랩플리(Matthew Rampley), 그리고 나 이지리아의 치카 오케케 아귤라느 이구동성으로 글로벌 미술사가 또 하나의, 다른 형태의 서구 미술사가 비서구권을 장악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207) 특 히 램플리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아프리카 미술사나 아랍권 현대미술에 대한 해석들은 대부 분 서구 미술사계에서 일하는 학자들에 의하여 생산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2003년 테헤 란 미술관에서 열린 ‘영혼의 시각(Spiritual Vision)’ 이라는 전시회를 인용하면서 세계적으 로 잘 알려진 아랍권의 쉐린 네샤(Shirin Neshat) 쉬라제 후지아리(Shirazeh Houshiary), 그리고 모나 하툼(Mona Hatoum)들을 엮는 주요 담론인 이주(diaspora)는 대부분 서구에서 교육을 받은 아랍 태생의 작가들에게만 익숙할 뿐 아랍권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나 관객들의 가치관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아랍권 작가들의 전시회인 ‘영혼의 시각’에 선보인 아랍 지역 작가의 대부분은 아직도 종교적이며 정체성의 문제를 결 국 무슬림의 틀 안에서만 이해하고 있다. 해체주의적인 사고는 아랍문명의 주요 관심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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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전 세계 미술사는 지역의 역사들을 정당하게 대변하려는 가상적인 미술사로 보이거나 아 니면 미술사의 이론적 집단(textural fauna)에서 전혀 새로운 종자와도 같이 보인다.“ (228) 대표적으로 시카고 대학의 바바라 스태포드(Barbara Stafford)는 형식주의의 퇴보 이후거대담론이사라졌으나대신인간의시지각적인감각기관과인지능력,즉그녀의 말을 빌리면 ‘역동적인 감각(dynamic senses)'에 대한 이론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문화나 사회에서 파생되는 미술들의 공통점을 다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187) 또한 세계 미술 (The World Art)” 학과를 네덜란드의 레이던 대학(Leiden University)의 키티 질만 (Kitty Zijlmans)은 언어학의 통시적이며 동시적인 영향관계를 예로 들어 특정한 문화권 내부에서 미술사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보다 폭 넓은 타 문화권과의 교류를 통해서도 미술의 변천을 설명하고 교육해 오고 있다.

 

 

대변한다기 보다는 아랍에 대한 서구인들의 시선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199-200)

  이와 같이 특정 지역 미술사가들 사이에 소위 국제무대에서 다루는 소재와 국내적으로 다 루는 연구 주체의 차이로부터 야기되는 문제점은 단순히 아랍권이나 인도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일본 미술사가 시게미 이나자(Shigemi Inaja)에 따르면 1996년 미술사학의 국제회 의(International Congress of the Art History in Amsterdam) (1966)에서 서구 미술사가 들이 일본의 원폭과 전쟁 기념물에 대하여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면서 발제를 진행한 것에 비하여 참여한 4명의 일본 미술사가들은 전쟁에 대한 기억보다는 보다 추상적인 기억을 다 룸으로써 자칫하면 국내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전쟁의 기억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최대한 회피하였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견해 차이는 19세기 말 일본 미술이 서구에 소개 된 이래로 계속되어 왔다. 원래 일본에서는 문인화에 비하여 저급한 것으로 취급 받아 왔으 나 유럽에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관심을 얻게 된 우키오에 판화는 다시금 일본 국내에서 도 재조명 받게 되었고 전통적인 서예와 서양 미술사에서 도입된 순수미술의 개념의 분쟁. 그리고 베르나르 베렌손의 제자이자 보티첼리에 대한 연구(1925)의 연구자로서 후에『일본 미술의 정수(The Essence of Japanese Art)』(1945/65)를 낸 야시로 유키오(Yashiro Yukio)등은 서구의 미술사적인 기준과 독자적인 시각, 혹은 국제 부대와 국내 미술사학계의 상황 속에서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모순된 상황을 겪어야 하는 일본 미술사학계의 역사에 대 하여 소개하고 있다. (253-57)

 

결론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문화적 차이점을 발견하고 서구 미술사를 상대화하는 작업은 현실적으로 요원한 일이다. 타 문화권에서 행해지는 미술사들과의 방법론적인, 개념 적인 유사성을 찾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문적 작업들이 병행되어져야 한다. 또한 서로의 공 통점과 차이점을 객관화하고 설명할 수 있는 기준들도 필요하다. 따라서 『미술사는 글로벌 한 것인가?』는 그 제목에서도 암시된 바와 같이 미술사와 글로벌리즘에 대한 특정한 담론 을 만들어 낸다기 보다는 독자들에게 문제점들을 제시하고 고민을 유발하기 위한 책이라고 할수있다.

  또한 이 책에는 흔한 후기 식민주의 이론이나 제임스 클리포드식의 민족연구 (Ethnography Studies)에 대한 이론들보다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점 들이지적되어있다.비서구사회에서미술사에대한연구지원확충,서로다른미술과문 화에대한이해를아우를수있는공통적인교과의과정,그리고텍스트의개발,그리고서 로 다른 미술사 개념간의 차이와 번역의 기준을 마련하는 등의 문제들은 이론적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쟁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미술사는 글로벌 한 것인가?』는 다양하고 낯선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어서 기존의 미술사가들에게 책을 읽는 과정이 지루하게 느껴 질 수 있다. 책의 결론부분에서 쉘리 에링턴(Shelly Errington)은 레오나르드 벨의 글을 인 용하면서 글로벌 스케일의 미술사 연관 자료를 다루는 과정은 일종의 방향이 없이 망망대해 로 나아가는 항해에 비교한다. 지도도 없이 거대한 바다를 헤쳐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탐험적(exploitatory)이고 유동적(fluid) 방식,” 그리고 다양한 목소리들의 공존, 모순, 그리고 그러한 목소리들 사이의 모순, 심지어 갈등조차도 포용하려는 태도”이다.(377) 한 없이 개방적으로 보이는 위의 문구는 읽는 이로 하여금 한없는 불안감과 허탈감을 경험하게 한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중요성은 독자들로 하여금 미술사 연구의 과정에서 간과할 수 있는 실제적인 연구의 요건들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특히 미술사의 다 양한 이론이나 방법론 뿐 아니라 그러한 것들이 파생된 본래적인 맥락과 서로 다른 문화권 의 미술계나 미술사학계와 만났을 때 빚어내는 문제점 등에 대하여 고심하게 만드는 책이 다. 물론 이러한 문제들은 국내 미술사가들에게도 해당하는 문제일 것이다. 과연 우리에게 ‘서양’ 미술사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리고 서구권과 비서구권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 다고, 혹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현 시점에서 우리는 어떠한 나레티브를 창출하고 교 육하여야 하는가? 과연 서구 미술의 도입뿐 아니라 서구 미술사 방법론의 도입 이후 우리의 미술사와 비평사는 어떻게 쓰여 져야 하는가? 과연 벨의 문구처럼 지도 없이 개척해 나가야 하는가?

 

© 2018. Koh, Dong-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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