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h, Dong-Yeon
고동연 高東延
바이크 맨 혹은 보이: 1960년대 동서부 팝아트에 등장하는 폭주족의 문화(The Bike Man or Boy: The emergence of motorcycle culture and 1960’s pop art)
고동연 (미술사)
미국 전후 폭주족의 탄생
영화배우 제임슨 딘은 1955년 자신의 포르쉐차를 타고 전 속력으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변을 당하였다. 영화 <이유 없는 반항(The Rebel without a Cause)>(1955)의 주인공으로 전후 미국 대중문화에서 최초의 청소년 우상이였던 제임스 딘의 죽음은 어찌 보면 예견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 삶에서나 그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이유 없는 반항>에서 제임스 딘은 일상사의 고통을 속도로 해결하려는 스피드광이었기 때문이다. <이유 없는 반항>에서 주인공인 짐과 버즈 일당은 고속도로에서 밤중에 자동차 경주를 벌이면서 힘겨루기를 하게 된다.
1950-60년대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고속도로의 자동차나 모토사이클 경주는 거친 남성성을 과시하는 주요 수단으로 떠올랐다. 만약 미국에서 제 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중시되었던 이상적인 남성상이 애국적인 남성상이었다면 전후 젊은 계층들에게 어필하였던 마초적인 남성상은 새롭게 뚫린 고속도로와 국도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바이크 족이나 스피드 광들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유 없는 반항>과 <거친 것들(The Wild Ones)>(1953)에서 가죽점퍼, 몸에 붙는 티-셔츠, 가죽바지나 청바지들의 외향적인 스타일은 전형적인 바이커의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특정한 스타일을 통하여 스스로를 타 그룹이나 일정 멤버들과 구분하고 자신들의 저항적인 의미를 외향적으로 드러내는 것 또한 하위문화의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다. 즉 바이크 족이 착용한 가죽 점퍼와 부츠 등은 스타일이 ‘일종의 저항의 형태’로, 혹은 프랑스 극작가 장 주네의 표현에 따르면 “범죄가 예술”이 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1) (실제로 전후 미국의 청소년들 사이에서 ‘착한’ 이미지의 연합군 비행사들이 착용하였던 갈색 가죽 점퍼 대신에 적군에 해당하는 나치 정예군의 위협적으로 보이는 검은 가죽 점퍼, 재킷과 모자, 부츠, 그리고 나치 문신(swastika)등이 ‘쿨’한 스타일로 인기를 얻었다.)
하위문화로부터 출발한 바이크 보이의 이미지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쳐서 흑인음악, 저항문학, 청소년 영화, 연극, 실험영화에 이르기까지 넓은 예술 분야에서 등장하였다. <이유 없는 반항>이나 <거친 것들>(1953)의 반항적인 젊은 남성상으로부터 1950년대 흑인음악에서부터 유래한 힙스터(hipster)들, 1950년대 말 고급문화인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On the Road)>(1957)에 등장하는 방랑자의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에서 바이커나 자동차 속도족이 등장하였다. 또한 전후 동성애 하위문화에서 가죽 점퍼에 부츠를 신은 남성상은 동성애의 새로운 자화상으로도 자리 잡았다.
따라서 이번 연재, ‘바이크 맨 혹은 보이들: 1960년대 동서부의 팝아트에 등장하는 폭주족의 문화’에서는 1950-60년대를 통하여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바이크 족이나 속도 경주 족과 연관된 1960년대 팝아트의 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 서부 팝 아트의 온상지인 페러스(Ferus)갤러리를 중심으로 모인 ‘스터드 (매우 남성적인 남성을 과장해서 부르는 말)’나 국도 66번을 여행하면서 기록한 에드웨드 루쉐(Ed Ruscha)의 ‘주유소’ 사진, 그리고 마지막으로 폭주족의 과장된 남성성을 풍자적으로 다루고 있는 워홀의 <바이크 보이>(1967)가 1960년대 폭주족이나 스피드광들과 팝아트 관련 작가들의 연관성을 증명하는 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서부 팝: 페러스 화랑, 빌리 벵스턴, 그리고 ‘피니쉬 페티시(finnish fetish)’
1950-60년대 바이커 문화와 순수 예술과의 관계를 다루는 과정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집단은 페러스 화랑과 연관된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페러스 화랑을 중심으로 발전된 서부 팝작가들의 작업은 한편으로는 동부 도시 예술가들과는 달리 스스로들을 자연 속에서 속도와 바람을 가르고 파도타기를 즐기는 남성적인 ‘스터드’로, 그리고 다른 한편 캠벨 수프나 만화와 같이 소위 미국의 실내, 혹은 가정에서 발견되는 대중문화 아이템들 대신에 자동차, 모토사이클, 고속도로의 풍경과 같이 자연과 문화의 접점에 위치한 하위문화 아이템들로부터 자신들의 예술적 영감을 찾아왔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페러스의 대표적인 작가 빌리 뱅스턴(Billy A. Bengston)은 자동차 수리공이 사용하는 재료와 염료들을 순수예술에 도입한 자신들의 작업을 “바디샵 회화”라고 명명하였고, 미국 개념미술, 혹은 책아트(artist's book)의 선구자인 에드 루쉐는 모토 사이클이나 고속도로를 소재로 한 작업들을 제작하였다.
페러스 화랑은 월터 홉스(Walter Hopps)와 키엔홀츠(Kienholz)등이 주축이 되어서 설립된 작가 위주의 화랑으로 1960년대 일상적인 오브제나 이미지들을 활용한 현대미술의 흐름을 본격적으로 서부 지역 미술계에 소개하였다. 1962년 앤디 워홀의 첫 개인전도 페러스에서 열렸고, 1957년에서 1962년까지 페러스의 공동 디렉터였던 월터 홉스는 1962년 파사디나 미술관(현재 노톤 사이먼 미술관)의 디렉터로 옮겨가면서 ‘일상적인 오브제의 새로운 회화(New Painting of Common Objects)전’을 기획하였다. ‘일상적인 오브제’전은 미국 미술관에서는 최초로 열린 미국 팝아트 전시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홉스는 1963년 미국 미술에서 뒤샹 오브제의 역할을 새롭게 각인시키게 될 뒤샹의 회고전도 기획하였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페러스 작가들은 ‘스터드,’ 즉 가죽점퍼에 달린 징이나 장식물을 지칭하지만 다른 한편 ‘정력적인 남성,’ 혹은 ‘남성다운 남성’을 가리키는 단어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그룹을 명명하였다. 2) 또한 이들은 호전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실제적인 교통수단이자 자유분방한 삶의 방식을 상징하는 모토사이클 이미지를 전시회 도록이나 엽서에서 자주 사용하였다. 빌리 뱅스턴은 1961년 페러스 화랑 개인전의 전시회 도록의 표지로 모토사이클을 타는 사진을 실었다.
빌리 뱅스턴외에 크레이그 커프먼(Craig Kauffman), 켄 프라이스(Ken Price), 에드 모세스(Ed Moses), 레리 벨(Larry Bell) 등은 어두운 스튜디오의 내부보다는 캘리포니아의 외부 환경에서나 발견될 수 있는 색상을 선호하였고, 자동차, 모토사이클의 외부를 장식하는 데에 자주 사용되는 모티브들이나 패턴들을 캔버스에 옮겨 담았다. 거의 비물질적인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레리 벨 미니멀 작업들의 매끈한 표면에 대하여 미술사가 로잘린 크라우스는 서부의 특수한 환경으로부터 기인한 ‘캘리포니아 숭고(California Sublime)’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3) 또한 실제 오토바이 레이서이기도 하였던 빌리 벵스턴은 1960년대에 이미 전통적인 캔버스 대신 알루미늄 판과 자동차 표면을 장식하는 라커를 사용하였다. 자동차 도정과정을 모방한 산업적인 공정을 사용하여 작품의 끝마무리를 지나치게 깨끗하게 처리했다는 점에서 페러스 작가들의 스타일은 ‘피니시 페티시(finish fetish)’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특히 뱅스턴의 작업에 등장하는 추상화의 패턴들은 이미 잘 알려진 상표, 상징, 아이콘들을 작가가 그대로 차용한 것들이다. 그는 1956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한 재스퍼 존스의 작품을 본 후로 이미 존재하는 간단한 상표들과 무늬들을 재활용하는 수법을 선택하였다. 따라서 <집행자(Buster)>(1962)에서 매끈한 표면, 인위적이고 채도가 높은 색상, 추상적으로 보이는 패턴은 빠르게 고속도로를 누비는 자동차나 오토바이의 해드 라잇, 파도타기 보드 무늬들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4)
루쉐와 국도 66번
“나는 1950년대 초반에 워커 에번스와 존 포드 영화, 특히 <분노의 포도>에서 가난한 ‘오키’ 출신이 가뭄이 들었을 때 오클라호마에 남아서 굶어 죽지 않고 자동차에 매트레스를 집어넣고 [미국] 서부로 가는 영화를 통하여 눈을 뜨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측면에서 나 자신에 대한 흑백 영화의 감정적인 정체성 혼돈을 경험하게 되었고 (나의 가능성을 모두 내거는), 그것은 오렌지를 먼지와 바꾸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에드 루쉐 인터뷰, 버나드 브루논) 5)
페러스의 작가들 중에 뱅스턴 만큼이나 고속도로와 근방의 도시 풍경에 집착하여 온 작가로 에드 루쉐를 들 수 있다. 6) 1960년대 초 루쉐는 그가 당시 살고 있던 로스앤젤레스에서 고향 오클라호마 시티로 여행하면서 고속도로 상에서 지나쳐온 주유소들을 찍어서 유명한 <26개의 주유소>를 완성하였다. 일반적으로 루쉐의 작업은 동시대의 동부 행위 예술가이자 북아트 작가인 비토 아콘치(Vito Acconci)의 작업들과 비교되고는 하는데 아콘치의 작업이 거의 순수하게 물리적으로 눈의 인식체계, 몸, 시간 공간과 같은 문제들에 매달리고 있다면 루쉐의 <26개의 주유소>는 작가가 새롭게 접하기 시작한 서부 캘리포니아의 모습을 유형화하고 도시의 특수한 풍경을 담고 있다.
루쉐의 가장 잘 알려진 책 <26개의 주유소>(1962)에 등장하는 66번은 원래 케루악의 <길 위에서>의 주인공인 살 파라다이스가 미국을 동서로 횡단하기 위하여 사용한 국도이다. 미국 고속도로의 어머니 격에 해당한다고 해서 ‘마더로드’라고 불리는 66번 국도는 시카고에서부터 시작하여 로스앤젤레스를 잇는 3396km의 긴 도로로 2006년 만화영화 <자동차들>의 배경으로도 사용되었다. 물론 루쉐는 빗(beat) 시인 케루악의 격정적인 반항 정신보다는 사물에 대하여 최대한 감정을 억제한 중성적이고 거리감을 둔 시선을 가지고 66번 국도에서 그가 접하게 되는 주유소들을 찍어 낸다. 루쉐에 따르면 그는 “전적으로 중성적인 결과(material)”를 원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자신의 책을 일종의 산업 사진에서 보이는 기술적인 데이터, 혹은 “레디메이드의 컬렉션”과 같다고 주장하였다. 7)
루쉐는 또한 끝없이 펼쳐진 수평적인 로스앤젤레스의 풍경들을 판화나 회화로도 제작하였다. <스탠다드 주유소>(1966)나 <불타는 주유소>(1966-65)에서 그는 문자들만을 강조하기 위하여 불필요한 배경을 삭제하였다. 결과적으로 서부 특유의 도시 환경과 자연 풍경이 어우러지면서 일종의 초현실적인 인상마저 형성된다. 또 다른 사진첩 <선셋 스트립의 모든 빌딩>(1966)에서 그는 24마일이나 쭉 뻗어있는 선셋 가로수길을 2 1/2마일씩 연속으로 사진 촬영함으로써 걷는 시선이 아니라 차를 타고 보면서 바라보게 되는 끝없이 펼쳐진 서부 로스앤젤레스의 도시 풍경을 부각시켰다.
루쉐 특유의 중성적이면서도 무덤덤한 스타일의 유머는 <로열로드 테스트>(1967)에서도 발견된다. 1960년대 개념 미술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우스꽝스러울 만큼 지나치게 일상적이고 하찮은 외부적 요인들을 작품 제작의 중요한 룰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아콘치의 작업에서 작가는 자신이 눈을 깜빡일 때마다 사진기의 셔터를 눌러서 연속사진 작업을 완성한 바 있다. 유사한 맥락에서 <로열로드 테스트>에서 루쉐는 움직이는 자동차 안에서 타자기를 고속도로 바닥에 내던지고 그것이 바닥에서 굴러 이동한 흔적을 기록하는 사진들로 일종의 나레티브와 같이 연속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여기서 자동차, 그리고 타자기는 다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타자기는 <길 위에서>를 집필할 때 사용하였던 타자기를, 혹은 자동차와 같이 길을 떠나는 남성성에 반대되는 전통적인 의미의 사무직 남성의 이미지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8) 자동차, 고속도로, 모토 사이클과 연관된 루쉐의 작업들은 전후 청소년 문화에서 부각되어온 새로운 형태의 ‘남성성’을 미묘하게 암시하고 있는 셈이다.
워홀의 영화 <바이크 보이(Bike Boy)> (1967)
만약 1960년대 서부 팝아트의 주축을 이루어온 페러스 화랑의 작가들이 고속도로나 국도를 누비는 마초적인 ‘스터드’의 이미지를 구가하여 왔다면 워홀의 영화에도 바이크 보이가 등장한다. 하지만 워홀의 영화 <바이크 보이>의 주인공 조 스펜서(Joe Spencer)는 1960년대 <나의 허슬러(My Hustler)>(1965)나 <외로운 카우보이들(My Lonesome Cowboys)>(1968)에 등장하는 카우보이, 남창 캐릭터들과 함께 일종의 풍자나 해체의 대상이 되고 있다. 9)
실제로 마초 바이커 이미지는 전후 급격하게 발전한 동성애 관련 잡지들이나 일러스트레이션의 발달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남성의 누드를 집중적으로 다루어온 육체미 잡지 <Physique Pictorial>에 등장한 톰 핀란드(Tom Finland)의 1950년대 말 일러스트레이션에서 동성애자들의 또 다른 전형인 가죽 바지와 몸을 부각시키는 티-셔츠를 입은 바이커 보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 실험영화의 선구자격인 케네트 앵거(Kenneth Anger)의 <바이커 전갈자리가 잠에서 깨어나다(Scorpio Rising)>(1964)에서도 나치의 문신을 팔에 새긴 가죽 점퍼의 바이커가 자신의 성적 판타지로부터 서서히 깨어가면서 영화가 진행된다.
워홀의 <바이크 보이>는 당시 워홀이 활발하게 활동하였던 뉴욕의 그린위치 빌리지가 아니라 샌 프란시스코의 남성 패션거리 폴크 스트릿에서 찍혔다. 영화의 주된 줄거리는 남성 의류점의 탈의실에서 두 명의 등장인물이 구멍을 뚫어 놓고 의상을 착용하는 남성들을 관찰하면서 코멘트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두 명이 화려한 비치 의상을 입은 남성을 바라보면서 코멘트를 하기 시작하고 곧 이어 모토 사이클 복장을 한 조 스펜서가 등장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영화적 시선과 두 명의 대화는 마초적인 남성성을 부러워하고 관조적인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다른 한편 ‘정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공격적인 남성성을 폄하하는 입장을 병행하게 된다.
특히 흥미를 끄는 부분은 장면이 바뀌어서 조 스펜서가 자신의 나치 문신과 남성적인 근육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조가 샤워하면서 자신의 몸을 비누로 문대는 과정에서 워홀은 그의 몸을 클로즈업함으로써 남성스러운 토르소와 근육을 강조한다. 그러나 대화의 장면들에서 스펜서는 뉴욕에서 자신이 아웃사이더로서 적당한 직업을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브리지드(레즈비언)는 이어서 조 스펜서를 소위 “모토 사이클 여왕(motorcycle queen)”이나 “가죽 여인(a leather lady)”으로 부른다. 이에 대하여 스펜서는 자신은 자신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자신을 비키니와 바이크를 합성한 듯 한 용어인 ‘비키(bikie) 맨,’ 그리고 사회에서의 변방인(outsider)으로 표현한다.
결과적으로 바이커 조 스펜서는 공격적이고 마초적인 남성상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누드를 그대로 노출시키면서 수동적인 위치에도 놓이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상적인 직업을 가지고 싶어 하면서도 스스로가 하위계층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체념한다. 게다가 극중 레즈비언 브리지드 슈퍼스타는 조 스펜서의 대화에서 그가 자신의 남성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바이크를 실제로는 소지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브리지드는 조를 남자 동성애자를 폄하하는 ‘패고(faggot)’라고 비웃으면서 그의 마초적인 남성성이 허구라고 비판한다.
1960년대 말 <외로운 카우보이들>로부터 <바이크 보이>에 이르기까지 워홀은 남성적인 바이크 맨을 타자화하고 풍자의 대상으로 변모시킴으로써 결국 마초적인 남성성, 그리고 그러한 남성성을 새로운 자아상으로 채택하고 있는 전후 미국 동성애 문화 모두에 대하여 ‘딴지’를 걸고 있다. 나치 문신을 팔뚝에 새기며 가죽 점퍼를 입은 조 스펜서의 이미지는 한편으로는 페러스 화랑의 경우에서와 같이 전형적인 마초적 남성성을, 그러나 다른 한편 허세스럽고 과장된 이중적인 의미의 동성애 하위문화가 등장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1960년대 미국 동서부 팝아트 이후
전후 미국의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등장한 속도족, 바이커들의 문화는 그 마니아적인 성격과 특정한 외향적 스타일(검은 징이 박힌 가죽 상의, 티-셔츠, 가죽 바지와 부츠)로 인하여 세계적으로 많은 추종자들을 나았다. 영화 <거친 것들>의 폭주족 이미지들은 영국식 바이커에 해당하는 ‘로커(Rocker)’문화나 일본에서는 가미나리 조쿠(雷族 “Thunder Tribe”)로 불리는 집단들에 영향을 미쳤고, 음악, 만화영화와 같은 다른 문화의 분야들과 결합하면서 바이커 이미지는 저항적인 청소년 문화의 한 원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현대미술에서 진정으로 저항적인 바이커 문화의 예들을 찾기란 쉽지 않다. 페러스의 ‘스터드’ 집단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바이커 문화가 단순히 자동차나 모터사이클과 연관된 예술적 테크닉을 차용한다는 것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1970년대 환경운동, 석유파동, 변화된 청소년 문화, 그리고 모토 사이클이나 바이커 문화의 상업화는 직 간접적으로 저항적인 의미의 바이커 문화가 쇠퇴하는데 일조하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현대미술에서 바이커의 이미지는 삶의 형태로서보다는 일종의 특정한 사회적 쟁점을 표명하기 위하여 사용되어져 왔다. 예를 들어 로버트 메이플도프의 사진에 등장하는 에스엠(S &M, Saomasochism)적인 이미지는 지속적으로 동성애 문화의 저항성과 바이커 문화가 동일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리처드 프린스의 <바이커 ‘영계’(Biker Chicks)> 이미지는 바이커의 저항적인 문화가 소위 성(性) 산업과 만나는 접점에 위치해 있다.
대신 현대 사회에서 바이커 문화는 1960년대 말과 1970년대의 경계에 선 영화 <이지라이더>(1969)에서와 같이 이미 가버린 한 시대를 풍미하는 상징적인 아이콘으로만 남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무작정 자유를 찾아서 떠난 두 바이커들, 결국 그들을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다고 믿고 의지하였던 모토사이클에 불이 붙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와이엇과 같이 전후 대표적인 저항문화의 상징으로서의 바이크 맨(혹은 보이)은 이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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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용, Dick Hebdige, Subculture, the Meaning of Style Study (London & New York: Routledge, 1979), p. 2.
2) ‘스터드’라는 명칭은 1964년 11월 페러스 화랑에서 열린 동명 타이틀의 4인전(에드 모세스, 로버드 어윈, 켄 프라이스, 빌리 벵스턴)으로부터 유래하였다. 페러스 화랑의 자세한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의 저서를 참조. Kristine McKenna, The Ferus Gallery : A Place to Begin (Göttingen, Germany: Steidl, 2009).
3)Rosalind Krauss, “Overcoming the Limits of Matter: On Revising Minimalism,” in Studies in Modern Art, no. 1 (New York: Museum of Modern Art, 1991). p. 133.
4)Thomas E. Crow, The Rise of the Sixties: American and European Art in the Era of Dissent (Laurence King Publishing, 2004), pp. 80-81.
5)Bernard Brunon,“Interview with Edward Ruscha,” in Leave any information at the Signal, ed. by Ed Ruscha and Alexandra Schwartz (Cambridge, MA: MIT Press, 2004), pp. 250-51.
6)서부 페러스 화랑의 디렉터였던 키엔홀츠의 잘 알려진 <뒷좌석 다지 ’38>(1964)는 전혀 다른 맥락이지만 전후 미국 청소년 문화와 자동차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준다. 다지는 당시 상당히 싸구려 차에 속하지만 주로 미국 젊은이들이 선호하였던 차종으로 뒷좌석에서의 ’첫날밤‘은 전쟁 직후 미국 청소년 문화의 본격적인 도래와 함께 시작되었다.
7)Ed Ruscha, “Concerning with Various Small Fires,” Artforum 3 no. 5 (February 1965), pp. 24-25.
8)1950-60년대 동안 사무직 남성의 이미지는 전후 미국의 경제성장에 이바지한 주요 계층이지만 동시에 수동적이며 거대한 사회 조직에서 개성을 잃어가는 희생당한 아버지 세대를 상장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유 없는 반항>에서 짐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소위 ‘잡혀 살면서’ 조용히 가장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으며 짐은 그런 수동적이며 연약한(emasculated) 아버지를 경멸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는 한다.
9)워홀은 1962년 페러스에서 열린 자신의 첫 개인전에서 당대 ‘섹시스타’ 엘비스 프레슬리 의 이미지로 한 벽을 도배하다시피 하였다. 1950년대 락스타로 데뷔한 프레슬리는 보수적이고 백인적인 취향의 프랭크 시나트라와는 달리 극도로 신체적인 성이 부각된 대중음악계의 첫 번째 남성 스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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