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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현대미술의 ‘동시대성’과 미술사적 기억

고동연 (미술사)

모든 미술사는 여타 역사학의 맹점을 지닌다. 미술사 또한 일반 역사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비평적 가치관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술사를 통하여 설명되어지는 미술운동들의 흐름, 주요한 작가들에 대한 역사적 해석 또한 편파적이고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20세기의 러시아 예술, 정확히 말해서 러시아 아방가르드, 1917년 공산주의 혁명 이후 소비엣 예술, 그리고 1980년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의 동시대 미술이야 말로 이와 같은 미술사의 한계상황을 그대로 드러낸다. 일차적으로 20세기 러시아 미술의 발전은 서방세계의 그것과 판이하게 달랐으며 그 개연성이 의심스러울 만큼 급격하게 변화되었다. 그리고 러시아 미술에 대한 우리의 대부분의 지식은 1989년 개방이전까지 서방세계의, 혹은 서방세계에 동조하는 러시아 출신 미술사가들의 글을 통해서만 주로 알려져 왔다. 게다가 1930년대 스탈린정권 이후 공산주의 정권하에서 공식적인 예술 이외의 창작 활동은 매우 위축되었고 심지어 예술작업들이 파괴되거나 작가가 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들도 비일비재 하였다. 한때 소비엣 체제하에서 예술적인 차이는 취향의 차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냉전시대를 거친 러시아 예술에 대한 우리의 정보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서방 세계의 미술이 주로 사회나 정치적인 현실로부터 분리된 예술의 자주성을 인정하여 왔다면 20세기 러시아와 소비엣 체제하의 예술은 전적으로 정부의 공식적인 예술 프로그램의 부분이었다. 따라서 예술의 성향이 거의 정부 방침에 따라 결정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17년 공산주의 혁명 이후 받아 들여졌던 러시아 구축주의는 결국 태생적으로 반러시아적이고 부르주아적적인 것으로 인식되면서 1930년대에 이르러 스탈린 치하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1934년 막심 고르키(Maksim Gorky)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에서 부정되어온 소위 전통적인 포크 페인팅, 러시아의 민화적 전통을 모순되게도 가장 반봉건적인 정치 제체하에서 부활시키도록 주장하였다. 1) 소비엣 체제의 문화정책은 전통적인 종교와 예술문화의 잔재를 철저하게 배격하고자 하였던 중국의 문화혁명(1969-79)과도 다른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소비엣 체제하에서 모든 예술가들이 ‘공식적인’ 정부 방침에 순응한 것만은 아니었다. 냉전시대 미국의 언론들은 추상적인, 즉 반, 혹은 비공식적인 예술성향을 따르는 소비엣 작가들을 소개하고는 하였다. 표현주의 작가 아나톨리 즈베레브(Anatoly Zverev)는 전체주의 국가 체제하에서 일종의 예술적 자유를 통하여 표현과 발언권의 자유를 추구하는 대표적인 작가로 다루어졌다. 2) 현재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게다가 세기 초 말레비치의 절대주의와 비교해서도 그다지 혁신적이지 않은 즈베레브의 표현주의적인 드로잉이 ‘반체제적인’ 것으로 규정된 것도 이데올로기를 작품 분석의 주요한 잣대로 여겼기 때문이다. 또한 1960년대 리아노조보(Lianozovo) 그룹 운동, 1974년의 불도저 전시회 등의 경우 특정한 예술적 취향으로 묶인다기보다는 일종의 반공식적인 예술이라는 안티테제로 다양한 작가들이 함께 분류되었다. 불도저 전시회에 참여하였던  오스카 라빈(Oskar Rabin), 코마르와 멀메이드 형제(Komar and Melamid), 알렉산더 자다노브(Alexandr Zhdanov), 레오니드 소코프(Leonid Sokov)는 개념미술, 설치미술, 팝아트의 다양한 예술적 성향들과 연관되었고 무엇보다도 그들이 공산주의 제체와 예술의 역할에 대하여 고민하는 방식도 천차만별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묶는 것은 개인적 예술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던 사회주의 리얼리즘 일변도의 소비엣 예술체제에 반항하는 반체제적인 입장이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1989년 개방 이후 구소련, 혹은 소련출신 작가들의 행보는 정리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양상을 띤다. 서방세계의 미술계에 더욱 어필하는 작가들과 이제까지 억제되었던 작가들의 개인적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흐름들이 봇물 터지듯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러시아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일리야 카바코프(Ilya Kabakov)를 비롯하여 코마르와 멀메이드 형제의 경우 사회주의 리얼리즘하의 영웅주의, 공동체적인 삶의 모습을 다루어왔다. 이들의 작업은 구소련 체제하의 인민들에게는 노스탤지어적인 대상이자 서방 세계의 관객들이나 미술비평가들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어 왔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소련출신의 작가들은 대부분 서구 사회로 망명한 상태이다. 정확히 말해서 그들의 예술은 예술과 사회의 새로운 연결고리를 찾아보려는 모더니즘 이후의 서구 미술비평계의 관심을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아예 AES+F 그룹은 러시아인들보다는 서구인들에게 친숙한 제프 쿤스식의 <비지네스맨의 장난감 공장(Business Man Toy Factory) (2008)를 내놓고 있다.

 

이에 반하여 예술과 사회의 연결고리보다는 매우 단순하고 일차적인 예술적 자유를 추구하려는 러시아 내의 작가들에게 정치적 쟁점은 부차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신 이제까지 누리지 못한 다양한 예술적 자유와 화풍을 복습하려는 열망이 1990년대 이후 러시아 미술계에는 팽배하다. 1960년대 삭슨 블라디미르(Sakson Vladimir)가 이끄는 레닌그라드 화파의 영향을 받은 풍경화파, 인상주의파, 전통적인 민화와 구두문화를 재생시킨 예들, 표현적이고 추상적인 인물화파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였고 1990년대와 21세기 러시아의 예술은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물론 이와 같은 상황은 지나치게 사회주의 리얼리즘 일변도였던 20세기 러시아 미술계에 새로운 활력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2008년 9월에 문을 연 거의 최초의 동시대 미술관인 ‘동시대 문화의 총집합체(The Garage Center for Contemporary Culture)’는 지난 60 여 년간 서구미술계와는 담을 쌓고 발전되어온 20세기 소비엣과 러시아 미술이 21세기에 서구 미술계의 현대/동시대성(contemporary)미술과 만나게 되는 교차점을 보여준다. ‘동시대 문화의 총집합체’의 설립은 동시대성이라는 개념이 더 이상 단순하게 정의될 수 없으며, 러시아 현대미술계도 국제미술계와 소통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동시에 21세기 러시아 현대미술의 복잡한 문화적, 정치적, 계층적 ‘다양성’을 진정으로 반영하고 러시아 현대미술의 ‘동시대성’을 스스로 정리하는 일은 또 다른 비평적 과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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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용 Grimes Farrer, “The Soviet Folktale as an Ideological Strategy for Survival in International Business Relations,” Studies in Soviet Thought 13 (1973), p. 55.

2) 미국의 라이프 매거진은 당시 소비엣의 공식적인 미술을 대변하는 블라디미르 세로브(Vladmir Serov)와 즈베레브를 일종의 긍정적인 예와 부정적인 예로 대비시켰다. 인용 N. Grigoryeva, Anatoly Zverev: Biography, a reference book, Moscow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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