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h, Dong-Yeon
고동연 高東延
청춘과 실패
고동연 (미술사가, 전시기획자)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청춘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청춘을 보듬으려는 ‘착한’ 의도만큼이나 자아의 발견이라는 미명아래 지나치게 경쟁구도를 강조하고 개인주의를 조장하는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2010)는 참고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전통적인 인고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책은 실패를 논하는 책은 아니다. 결국 수많은 청춘예찬론자들은 성공에 집착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성공할 것이라는 모순된 성공지향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청춘을 논하는 대부분의 사회 인사들이 성공한 사람들이라는 점 때문에 그들의 메시지는 궁극적으로 설득력을 잃는다. 과연 성공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시행착오와 진정한 실패는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실패의 책임은 온전히 누가 지게 되는가?
아티클의 청춘 기획과 맞물려서 필자는 ‘실패’라는 주제의 전시 기획을 제안한다. 전시를 위해서 작가들과 기획자들로부터 실패에 관한 경험담과 이미지들을 수집하였다. 세련된 영상물의 결과에 불만족한 작가로부터 작동하지 않는 기계를 실패의 요인으로 꼽는 작가, 아예 작업이 전시장에서 보이지 않거나 작업 자체가 전시장 공간을 비우는 획기적인 전시를 실패로 꼽는 작가와 전시 기획자도 있었다. 실패의 경험과 기준들은 각기 다르다. 필자는 전시에서 관람객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첫 번째, 왜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는가? 두 번째, 과연 실패와 성공의 기준은 예술창작과 전시의 과정에서 어떻게 결정되는가? 실패의 경험을 정신적으로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전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적어도 자신의, 혹은 남의 실패를 우리는 직면할 수 있게 된다. 단, 기획자와 작가들은 이번 전시의 실패 여부에는 신경 쓰지 않고자 한다.
1. 왜 예술가들은 실패를 두려워하는가(?)
함혜경의 <부엉이 노래> (영상, 2006)
프랑스에서 온 미리암 리(Miriam Lee)와 공동작업을 했던 적이 있다. 그녀가 뉴욕에서 찍어온 사진에 내가 나레이션을 쓰는 형식이였는데 그녀가 보내온 사진은 인테리어 잡지에 실릴 법한 세련된 도시 전경사진이였다. <부엉이 노래>라는 8분짜리 비디오로 완성 되었지만 지금 봐도 굉장히 지루하다.
최종하의 <취소기계> (설치, 2012)
‘취소기계’를 만들 때, 기계에서 ‘취’, ‘소’ 소리가 나오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작업에 들어갔는데, 처음 설계하고 만든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전혀 다른 디자인의 기계를 다시 구상했다.
임상빈, <태안기름유출사고에 관한 주관적 보고서>, 전시 전경 (호기심에 대한 책임감, 2008)
임상빈의 “보이지 않게 설치된 드로잉” (드로잉 설치, 2008)
개인전에서 전시된 <태안기름유출사고에 관한 주관적 보고서>는 걸레받이 부분에 설치되었다.... 매스미디어로 보는 태안은 세상 끝의 풍경과 같아서 이 둘을 붙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관람객들은 들어오자마자 텅 빈 눈높이의 흰 벽만을 보게 되었다. 전시 준비 중? 아니면 벌써 철수? 배꼽을 잡고 웃었다.
송미경의 청춘 프로젝트 (공연, 2009)
청춘(靑春)의 제목으로 진행되었던 작업이 생각난다.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모여 함께 진행하였던 프로젝트로 협업작업이라는 것에 대한 고민을 나에게 안겨주었던 그때가 기억난다.
이단지 전시기획자의 <54.6M³ Parallelepiped>전 (전시기획, 쌈지마켓갤러리, 2007)
건축을 전공한 이자이는 나에게 “아무것도 없이” 비워진 전시장 공간에 또 다시 “아무것도 없는” 평행육면체의 공간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그녀의 시도는, 과연 오브제 자체로써의 공간을 획득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전시장의 원본적 기능을 의도적으로 실패하게 만든다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의문에사부터 출발하였다.
2. 예술가들은 실패와 성공의 기준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함혜경: 나에게 있어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같다. 간단히 말해 자신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종하: 작업을 구상하고 끝내기까지, 나 스스로 초점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첫인상’이다. 첫인상이라 함은 본인이 작품을 본격적으로 구상하기 전에 가상의 결과물을 머릿 속에 그려보고, 그것으로부터 받는 느낌이다.
임상빈: 전시는 보이지 않아서 실패했고 그래서 성공했다. 비주얼의 세계에서 주목받긴 글러먹은 한심하면서도 대견한(스스로에게) 전시였다. 아주 먼 미래에 회고전을 한다면, 작은 방 하나는 꼭 다시 연출해놓겠다고 다짐한 나름 자부심이다.
송미경: 처음부터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지는, 선택하지는 않는다. 다만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무대 위에서 바로 느껴지는 것(관객과의 소통). 그게 나의 성공과 실패를 알 수 있는 하나의 잣대가 된다.
이단지: 개인전을 준비한 작가의 프로젝트로써는 성공했지만 기획자의 역할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실패의 부분은 전시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작가의 실험에 대해 지나치게 대안이 없이 관객을 맞이했는데, 기간 내내 조명조차 사라진 곳에서 프로젝트를 유지한다는 것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나 자신도 “일반적인 전시공간의 구조를 실패하게 만드는 것”=”전시의 실패”라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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