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신디 셔먼, 포스트 페미니즘, 그때(1980년대)와 지금

고동연 (미술사)

 

나는 적어도 1990년까지는 돈을 벌지 못했다—나는 금전적으로 자급자족하였다. 그러나 소위 남자 화가들(guy painters)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나는 그 사실에 화가 났었다. 1)  (신디 셔먼과 데이비드 프랑켈의 인터뷰, “1980년대를 회상하며,” 2003)

 

여성주의자들의 입장은 포스트모더니스트자들의 위치이기도 하다. 2) (크레이그 오웬스, “타자에 대한 담론,” 1983)

 

“더 이상 여자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기 위하여 차별정책을 쓸 필요는 없다”고 사업체의 수장들이 말하고는 한다.... 하지만 여성들 스스로는 다르게 느낀다. 국가차원의 조사들에 따르면 대다수의 여성들은 아직도 성평등의 상태로부터 훨씬 멀어져 있다고 대답한다. 3)  (인용, 수잔 팔루디, 『여성주의에 대한 반동: 미국여성들에게 공식적으로 선전포고되지 않은 전쟁』, 2006)  

 

성공한 (여자) 사진 작가 신디 셔먼
1980년대 신디 셔먼은 당시 포스트모더니즘 논쟁 속에서 성차별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서 셔먼의 소외된 처지를 일반 여성작가들의 처지와 동일시하기는 힘들다. 셔먼은 전후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작가 중의 한명일 뿐 아니라 그녀의 성공은 1920-30년대 프리다 칼로나 조지아 오키프에 비교해서도 더욱 의미심장하다. 보통 여성작가들이 남성작가들과의 관계나 개인의 독특한 삶의 이야기로 관심을 끌게 되기가 일수인데 반하여 셔먼에 이르러 특정한 꼬리표를 달지 않고도 미술사에서 여성작가를 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셔먼은 바바라 크루거등과 함께 1980년대 “픽쳐 제너레이션,” 혹은 대표적인 포스트모던 작가로 분류된다.

 

나아가서 셔먼의 성공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여성미술과 셔먼의 이중적인 관계를 통하여 얻어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셔먼은 전 세대의 페미니즘을 부정하면서도 그로 인하여 성공한 작가이다. 셔먼이 카메라 앞에서 다양한 여성으로 분하여 찍어온 자화상 사진들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주디 시카고나 미리엄 샤피로 등의 초기 여성미술과는 대조를 이룬다. 그녀에게 여성이란 고정된 것도, 남성의 가부장 체제하에서 전적으로 억압받아온 개체가 아니다. 대신 여성성을 재현의 문제로, 정체성을 고정되지 않은 것으로,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훨씬 유동적으로 다루면서 셔먼은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셔먼은 포스트 모던시대의 페미니즘, 혹은 포스트 페미니즘으로의 중요한 교두보를 마련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셔먼이 의도하였던 아니었던 간에 셔먼 이후의 현대예술에서 여성주의는 점차로 처절한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정체성의 재구성과 같은 추상적이고 지적인 과정으로 대체되었다. 셔먼의 예술은 여성의 정체성이 부정되고 1989년 포스트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공공연하게 매체를 통하여 인용되면서, 여성운동을 한물간 이데올로기로 여겨지게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올해 2월부터 6월까지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셔먼의 회고전은 그녀가 197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알려진 이후로 지난 30여년간 여성미술이나 여성운동의 변화를 되짚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포스트 페미니즘의 필독서인 『여성주의에 대한 반동』(2006)에서 수잔 팔루디는 외형적으로 성공을 거둔 듯이 보이는 ‘여성상위시대’의 도래는 여성들 스스로 조자도 성차별의 실상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4) 물론 여성운동 이후 많은 여성들이 전문직에 진출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미국의 직장여성들의 75퍼센트는 연봉이 2만불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에서 여성의 소득은 남성의 소득의 70퍼센트 정도에 그친다.) 게다가 여성 지도자들은 남성 지도자들에 비하여 그들에 대한 능력에 대한 끝없는 공세에 시달려야 한다.  

 

그렇다면 1980년대 프스트모던니즘 담론으로부터 시작된 셔먼의 예술은 팔루디가 주장하는 여성주의가 쇠퇴하게 된 시대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가? 여성의 고정된 정체성에 대하여, 사진의 진실(truth)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여온 셔먼의 실험적인 행보는 21세기 여성운동과 여성미술의 미래에 어떠한 점을 시사하고 있는가?

 

셔먼과 포스트모더니즘
이번 셔먼의 전시회는 말 그대로 1979년부터 현재까지 그녀의 작업 행보를 전체적으로 재조명하는 회고전이다. 전시회에는 가장 잘 알려진 초기 ‘무제’ 작업으로부터 1981년에 아트 포럼으로부터 제안을 받아서 미술잡지에 실렸던 “센터폴드(centerfole)” 시리즈,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1988-80년도의 “역사 초상화(History Portraits)” 시리즈, 반면 강렬하고 파격적인 1980년대 중반의 “혐오(Disgust)” 시리즈, 1990년대 초 “섹스 픽쳐(Sex Picture)” 시리즈, 그리고 마지막으로 1990년대 이후 마네킹(Mannequin) 시리즈, 2000년대 여자 사회명사의 시리즈 등 셔먼의 주요 작업들이 총망라되어져 있다.

 

덕분에 전시회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지난 30여 년간에 제작된 셔먼의 작업들을 현재의 시점에서 바라보도록 만든다. 예를 들어 1980년대 포스트모던 논쟁이 한참일 때 셔먼은 유럽의 좌익 이론이나 후기 구조주의 이론에 영향을 받은 많은 뉴욕의 비평가들에 의하여 대안적이고 긍정적인 작가로 다루어졌었다. 1993년 국내에서도 전시를 가진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한 4인방들이나 독일 표현주의 작가들이 보수적이고 퇴행적으로 여겨진 것에 반하여 당시 셔먼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덜 보수적이고, ‘제대로’ 실험적인 작가로 분류되었다. 뿐만 아니라 셔먼은 여성으로서 포스트모던 이론에서 간과되어온 정체성의 문제를 부각시킨 중요한 예로 오웬스의 비평문 “타자에 대한 담론”(1983)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셔먼이 포스트모던 이론가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포스트모던 담론에서 문제시되어온 고급예술과 대중문화, 남성과 여성, 사실과 허구 등의 주요한 이분법을 허무르는데에 있어 셔먼의 작업이 주요한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셔먼이 참고로 하는 많은 이미지들은 대중소비문화로부터 유래하였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통하여 여성을 약자로서가 아니라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존재로 다루어 왔다. 1979년에 시작된 셔먼의 최초 무제 시리즈에서 셔먼의 이미지는 전형적인 영화나 매체에 등장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취하고는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그다지 예쁘지도 않고 무엇인가 어색해 보인다. “센터폴드”에서도 의례적으로 플레이보이 잡지의 중간 페이지에 등장하는 야한 여성이 아니라 성적인 매력을 느끼기에는 지나치게 두려움에 떨고 있고 아름답지 않은 여성이 등장한다. 이와 같이 셔먼의 초기 작업에서 작가는 남성의 일방적인 성적 시각적 전유물이 되기에는 2퍼센트 부족한 상태로 분한다. 보아지는 여성의 위치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때에 따라서는 이에 대하여 반항하고 그러한 메커니즘을 ‘간섭’하고 심지어 거부하는 여성의 모습들이 재현되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 포스트모던 이론과 연관된 셔먼의 작업들은 여성미술의 정치적인 정당성과 위기의식을 약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5) 오웬스의 글은 후기 구조주의적인 입장에서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여성의 타자화된 정체성을 쟁점화 하였던 여성주의자들의 입장에 대하여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브레히트의 이론에 근거한 좌익 성향의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재현되어져 온 여성의 정체성과 여성의 이미지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으로 여성미술을 한정시켰다. 반면 여성 미술사가 아멜리아 존스는 포스트모던적인 전략에 의존한 이와 같은 여성미술이 궁극적으로 여성의 문제를 보편적인 타자들의 이슈들 속으로 침잠시켰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존스에 따르면 1990년대 미술비평에서 여성미술은 더 이상 특수한 위치를 부여 받지 못한 채 포스트모던 미술의 한 분파로 전락하게 되었다. 6)

 

이번 회고전에서도 여성성이나 여성미술에 대한 논의는 최대한 억제되었다. 토론에 초대된 엘리자베스 페이튼(바이 섹슈얼로 알려진)은 정체성의 문제를 예술적 재현의 문제로 국한시켜서 이야기한다. 셔먼은 사진의 분야에서 자화상이라는 장르를 부활시킨 작가이지만 동시에 작가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꽤나 차단시킨 작가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언제곤 자신이 아닌 다양한 캐릭터로 연기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이론상 그녀의 정체성 또한 일관되고 깊이를 지닐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미술의 새로운 시대적 과제
여성학자들은 포스트 페미니즘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대중매체를 통하여 과대 포장된 성공한 여성들의 이미지가 지니는 허상에 대하여 지적하여 왔다.
7) 포스트 페미니즘의 가장 대표적인 예에 해당하는 <섹스 인 더 시티>나  <내조의 여왕>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외형적으로는 남성을 위압할만한 지혜와 힘을 지닌다. 그들은 1960년대 말의 전통적인 페미니스트들과는 달리 자신의 성적인 매력을 마음대로 발산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도시의 여성들은 여전히 남성에게 의지하는 모순된 양상을 보인다. 게다가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반 이상주의적이라는 명목 하에 지나치게 현실 순응적이다. 실제로 셔먼 이후의 여성미술들은 극단적으로 보수화되기도 하였다. 바네사 비크로포드의 작업(프라다와 협업하여 비키니를 입은 여성들을 미술관에 세워 놓은)은 고루한 여성주의 담론과 결별을 주장하다 못해 기꺼이, 자신 있게,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되돌리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시회의 마지막에 주어진 셔먼의 사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버버리 힐즈의 상류층 여인들은 금융위기 직전에 극에 달했던 물질만능주의를 대변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포스트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돈 많은 여자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또 다른 해석을 낳는다. 왜냐면 외형적으로 성공한 여자들은 포스트 페미니즘 시대에 여성운동의 공과 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사회적 그룹이기 때문이다. 부유층 여성들은 가장 힘 있고 성공한 여인들의 면모를 지닌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포스트 페미니즘 시대에 여성이 진정으로 해방되었다는 과장된 사회 인식을 야기시킨 주범이자 희생양이다.

 

그렇다면 여성운동이 한물간 이데올로기라고 여겨지는 시대에 셔먼의 작업은 우리에게 어떠한 시대적 과제를 던져주는가? 셔먼은 포스트 페미니스트 시대에 성공한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여성미술과 이중적인 관계를 지닌다. 자신을 다양한 형태의 여성으로 분하고 있는 셔먼은 현대예술에서 여성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동시에 셔먼은 결국 그가 재현하고 있는 대상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대한 비평적 관심을 오히려 무력화 시키는데 일조하였다. 셔먼은 처절한 여성운동과의 연장선상이 아니라 포스트모던이라는 세련된 이론의 후광을 입고 미술계에 등극하였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셔먼의 예술을 돌아보면서 이제는 여성 미술이 적어도 다시금 성차별의 사회적 현실을 재인식해야할 때가 되지 않았는지 필자는 반문해 본다.

 

-------------------------------------------------

1) 인용 David Frankel, “'80s Then – Interview,” Artforum, March, 2003.

2) Craig Owens, “The Discourse of Others,” The Anti-Aesthetic, ed. by Hal Foster (Washington Bay Press, 1983), p. 64.

3) Susan Faludi, Backlash (Broadway; 2006), p. 1, 6.

4) 앞글, p. 2,

5) 오웬스는 셔먼이 정체성이 아니라 전통적인 성적 정체성의 차이와 재현 자체를 문제시한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연관시키고 있다. 앞글, p. 62

6) Amelia Jones, “Feminism, Incorporated,” The Feminism and Visual Culture Reader (Routledge, 2002), p. 323.

7) 포스트 페미니즘은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을 배제하고 현실정치학에 안주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사고와 페미니즘이 결합된 형태로 인식되기도 한다. Rosalind Gill, “Post feminism Media Culture. Elements of a sensibility,” European Journal of Cultural Studies, 10(2) (2007), pp. 163-64.

 

 

© 2018. Koh, Dong-Yeon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