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연관된 이미지들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사건 그 이후, 그리고 사진

고동연(미술사가)


“내게 사진은 동시적인 인식이다. 이벤트의 중요성과 이벤트에 대한 적절한 표현을 부여할 수 있는 형태구조를 인식하는 데에 있어 순간이면 된다." (까르띠에-브레송 1952)  1)

 

“사진은 그 이벤트가 계속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그리고 그 이벤트의 영속성은 이벤트의 시간성에 대한 애매모호함을 만들어낸다.” (주디트 버트러 2007)  2)

 

전통적으로 사진의 중요한 역할은 리얼리티의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사진작가들로 이루어진 매그넘(Magnum)의 주요 멤버인 까르띠에-브레송(Cartier-Bresson)의 사진집 제목은 ‘결정적인 순간(Decisive Moment)’이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의 주요한 능력은 이벤트 전체의 중대한 순간을 직감하고 순간적으로 주어진 리얼리티를 사진화면의 프레임 내부로 드라마틱하게 구성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최근 국내외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전시 중인 예술가들이나 사진작가들이 사용하는 시간 개념은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 이론으로부터 이탈해 있다. 현대 사진이 ‘영화적(cinematic)’이라고 단정한 비평가 데이비드 캠퍼니(David Campany)의 말처럼 이제 사진은 더 이상 찰나적인 예술이 아니다. 현대사진은 이미 많은 ‘이야기’와 시간성을 내포하고 있다.  

 

나아가서 일련의 국내 예술사진에서 우월적인 순간이나 시점은 아예 재해석의 대상이 된다. 3) 사진에서 다루고자 하는 이벤트의 극적인 순간이나 중요 이미지들은 배제된다. 아예 이벤트가 일어나기 이전의 순간, 혹은 이벤트가 일어난 후의 전개상황에 관심을 집중하는 작가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7월 송은 아트큐브에서 전시한 사진작가 김재범, 삼성 리움 미술관의 스펙트럼에 포함된 김아영의 2008년 <자살소동>과 같은 작업들, 이번 금천미술공장의 전시회에 선보였던 임흥순의 제주 4.3사태를 다룬 <숭시>, 그리고 국내 젊은 작가로는 드물게 지속적으로 전쟁이나 난민의 주제를 다루어온 윤수연 등은 폭력 사건 그 이후(혹은 그 이전)을 사진의 주요한 시간적 배경으로 삼는다. 또한 이들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폭력과 연관된 테마를 다루고 있는데 폭력과 연관된 주제야말로 가장 순간의 드라마를 필요로한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수잔 손탁(Susan Sontag)은 『타인의 아픔에 관하여(Regarding the Pain of Others』(2003)라는 책에서 사진이 궁극적으로 가장 폭력적인 순간을 제대로 재현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한바 있다. 4) 사진에 대한 해석이 캡션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철학자 주디트 버트러(Judith Butler)는 과연 사진에 대한 해석이 사진 속의 정보에 의존해서만 진행되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버트러에 따르면 결국 사진에 대한 해석은, 실은 사진 자체속의 이미지보다도 사진을 둘러싼, 그것을 찍고 있는 작가, 관람자, 그리고 그것이 전시되는 모든 절차와 방식에 영향을 받는 현재진행형이다. 심지어 폭력적인 장면을 보여줄 수 없는, 혹은 보여주지 않는 매우 의식적인 결정들조차도 사진 속 이미지를 해석하는 과정에서는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결정적인 순간’의 드라마를 배제하고 소외된 리얼리티를 재구성하려는 최근 예술사진들은 사진작가와 리얼리티, 관람객, 그리고 해석의 문제에 있어서 어떠한 성과와 과제들을  던져주고 있는가?

 

때늦은 사진과 사건의 배후
“이미지로서 얻을 수 있는 간접 경험이라는 것은 명백한 한계치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래서 또 다른 시각언어의 결합을 사용하여 관람자가 체감할 수 있는 경험의 폭을 넓혀 보고자 사건을 재구성하는데 사용한 신문과 기타 자료들을 함께 사용하였다.” (김재범, 덕원갤러리, 2010)

 

김재범은 여느 사진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리얼리티와 사진과의 관계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작가는 이러한 한계상황을 극복하고자 이미 잘 알려진 보도 사진 이미지 너머에 존재하는 각종 기사들, 보충 자료들을 전시장 내부에 걸어 놓고 일종의 탐정과 같이 관객들이 사건을 재구성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김재범은 폭력 사건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시간적인 추이에 집중한다. 작가는 2008년 당시 8세였던 나영이 어린이의 성폭행 및 상해 사건의 용의자 조두순과 연관하여 각종 자료들을 수집한다. 그리고 이어서 사건 이후 성폭행자들의 삶을 <Let’s Wait and See>에서 다루게 된다.

 

<Let’s Wait and See>에서 전체 화면은 공개된 성범죄자들의 증명사진들로 이루어져 있다. 증명사진 너머의 두 범법자의 이미지는 성폭행자였던 박상철(가명)씨의 살인사건에서 사라진 CCTV를 작가가 새로 만든 것이다. 박상철의 시신은 불에 태워져서 발견되었고 사건 직후 CCTV는 삭제되었다. 여기서 나영이 사건과 성폭행자 박성철(가명)의 사건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작가는 통상적으로 공공의 적이자 가해자로만 취급되는 성폭행자들이 사건 이후 어떠한 생활을 하게 되는지에 관심을 기울이다가 성폭행 살인사건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김재범의 사진은 단순히 사건의 전후를 재구성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우리가 주로 미디어의 보도를 접하게 되는 사건들의 전모에 대하여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에 대하여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예를 들어 <Marry Me>는 2010년 전 애인의 어머님 송모 씨를 살해한 후 애인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인 사건에 관한 것이다. 사진은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살인범이 범죄를 저지르기 이전 인질과 연애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초록색과 보라색의 색상대비와 뒤쪽으로 부자연스럽게 달이 떠 있는 풍경은 의도적으로 서정적이면서도 불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러나 <Marry Me>의 장면이 이미 둘 사이의 갈등을 암시하고 있는지, 아니면 한때 연인들이었던 이들도 사회의 편견이나 제약의 희생양들인지, 사진은 우리에게 어느 것도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실상 사건에 대한 보도를 통하여 폭력 사건의 전말을 알기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태에서 과연 사진에 대한, 그리고 사건에 대한 진실된 해석은 가능한 것인가? 폭력 그 이후 사건의 전말을 스스로 상정하는 김재범의 작업은 적어도 우리가 폭력 사건에 대하여 갖게 되는 정보, 그리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가해자에 대하여 품게 되는 적개심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때늦은 역사의 탐색
이번 금천예술공장의 전시에 선보인 임흥순의 신작들도 이미 종결된 역사적 폭력사건(혹은 항쟁)을 탐색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1947년 제주 4.3 사건/항쟁은 아주 오래 전 역사 속에 묻힌 사건이다. 작가는 역사적 자료들이나 제대로 증언해줄 증인들이 변변치 않은 현시점에서 일차적으로 제주도의 자연경관들로부터 흔적의 단서를 가정해본다. 돌 위에 남아 있는 발 모양 굴곡, 거대한 바위들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나오는 싵타래와 같은 식물의 모양새를 작가는 못내 과거에 완전히 묻혀있지 않는 잊혀진 역사적 사건의 처지와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진 이미지들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정확한 실증적 자료라기보다는 과거의 기억을 찾으려는 작가의 마음에 투영된 이미지에 가깝다.  

 

미디어 작업<숭시>에 선보인 제주도 4.3 사건 이후 오사카로 건너간 제주도인들이 만든 용왕문에 대한 해석 또한 불분명하다. 5) 용왕문은 일반적인 물건들로 만들어진 일종의 즉흥적인 기념비에 해당하며 현재는 일본의 전통 종교와 배척된다고 하여 폐쇄된 상태이다. 작가는 일차적으로 거북이와 학을 불노장생을 기원하는 십장생과 연관시킨다. 또한 옆에 서 있는 생뚱맞은 인형은 그들에게 주어진 모든 물건들에 일종의 신적인 기운을 부여하는 제주도 특유의 종교적인 풍습과 연관시킨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물건들의 의미, 용왕문의 출처는 희미한 역사적 기억만큼이나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희미한 역사적 흔적에 근거를 두고 있는 임흥순의 사진은 직접적으로 참혹상을 전달하는 전쟁사진들과는 또 다른 미학적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사진 이론에서 전쟁사진이 지닌 센세셔널리즘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미지 자체가 지닌 충격성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미묘하고 지속적인 갈등의 역사를 쉽게 망각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관람객들은 참혹한 광경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타자와 자신의 처지를 분리시키고 결국 폭력적인 현장을 일종의 스펙터클과 같이 관찰 대상으로 전락시켜 버릴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이론가 데비 리슬(Debbie Lisle)은 중동의 전쟁 후 폐허가 된 호텔, 레스토랑을 찍어온 사이먼 놀폭(Simon Norfolk)의 ‘호텔 아프리카’를 인용하면서 “메시지가 완결되는 것을 최대한 지연”하는 모호한 사진들은 결국 관람객들이 타자의 이미지에 비하여 “우위의 시점을 점유”하게 되는 순간 또한 유사하게 지연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시간이 훨씬 흐른 시점에서 작가가 모은 제주 4.3과 연관된 역사적인 자료들은 갈등의 축이 다양하게 엮여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아카이브에 등장하는 제주도민, 제주도의 풍경, 미군, 서류들은 결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규명이 쉽지 않다는 인상마저 준다. 반면 자연에 상징적으로 새겨진 폭력의 상흔들은 폭력적인 과거의 ‘사건’을 단순히 동정심이나 호기심의 차원에서부터 벗어나서 현재의 시점에서 바라보도록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거사에 대한 해석이 과거, 현재, 미래의 어느 한 시점에 속한 것이 아니라 버트러가 주장한 바와 같이 영속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준다.

 

전쟁 그 이후: 홈 커밍
윤수연 작가는 폭력적인 사건을 다루는 일련의 사진 경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신세대 작가이다. 그녀는 국내 작가로는 드물게 전쟁과 전쟁으로 인한 난민의 모습을 포착하여 왔다. 뿐만 아니라 윤수연 작가의 사진에는 이라크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에 해당하는 두 그룹이 함께 등장한다. 2007년 이라크 참전 미군병사들을 다룬 <홍커밍>, 그리고 2009년 이라크 전쟁 이후 중동에 흩어진 난민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전쟁 그 이후의 일상적인 모습들을 미국과 이라크의 경계선을 넘어서서 기록하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일상생활에서 전쟁의 흔적을 재현해내는 방식들은 지극히 담담해서 코믹스럽거나 심지어 잔인하게까지 느껴진다. 이라크에서 하반신 불수가 된 로니가 부인이 떠난 자신의 집에 우편물을 챙기러 왔다가 시간 내에 일을 보지 못하고 실수를 하게 되었고 작가는 동의하에 말리려고 의자에 걸어놓은 그의 바지를 찍었다. 남편이 급작스럽게 병원에서 돌아가신 후 미쳐 남편을 환영하는 플래카드는 떼지 못한 미망인은 옆집 아주머님과 수다를 떨고 있다. 원래 미망인은 사진을 위하여 나름 포즈를 준비하였지만 준비시간이 길어지면서 옆집 아줌마를 맞이하였고 이때 작가는 셔터를 눌렀다. 의도적이던 아니던 간에 윤수연 사진에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보면 타이밍을 잃은 대상들이 등장한다.

 

윤수연의 사진에서 전쟁과 연관된 기억들은 전쟁후 일상 삶속에 묻혀 있는 듯이 보인다. 미처 떼지 못한 환영 플래카드는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아 보인다.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부모의 거실에는 아직도 아들의 사진과 상장이 즐비하다. 전쟁은 이들 삶의 지평을 바꿔 놓았지만 언뜻 보기에 그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잊고 있거나 부정하거나 심지어 그로부터 덕을 보고 있다. 작가는 흥미롭게도 이라크 전쟁 이후 난민촌의 모습에서도 일상적인 삶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물론 그들이 사용하는 많은 물품들과 거주하는 곳에는 참혹한 전쟁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들의 물건들에는 상표가 아니라 국제구호기구의 마크들이 새겨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하게 티를 즐기는 이라크 난민들이나 미국식 가족식당을 방문하는 이라크 가족의 모습은 전쟁 후 가해자와 피해자의 삶의 모습을 우리가 일반화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결국 윤수연의 작업에서 이라크 참전 미군들, 가족들, 그리고 이라크 난민들의 전쟁 후 삶은 단순한 지옥도 그렇다고 단순한 천국도 아니다. 아니 군인들과 민간인들은 모두 거대권력의 희생자들이다. <레스토랑 라칼(La Calle)>에서 타자화된 난민과 가해자, 혹은 난민을 관찰하는 작가의 시선이 혼돈되어 있다. 외국인들과 내국인들이 함께 섞일 수 있는 레스토랑의 발코니 왼쪽에 통역을 도와주는 난민청년과 작가의 이미지가 반사된다. 레스토랑의 유리문 너머 안쪽에 축구중계를 하고 있는 텔레비전 화면이 외부의 풍경과 중첩된다. 즉 내부와 외부가, 난민과 난민을 바라보는 작가의 위치와 시점이 혼돈되면서 작가는 더 이상 난민의 반대편에서 관찰자로서만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

 

후기: 폭력적인 이미지에 대처하는 방법
최근 국내사진 작가들이 지나간 사건이나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들은 단순히 리얼리티를 재현하는 수단으로서 사진이 지닌 문제점을 비판하는 단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폭력과 연관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이나 역사적 사건들의 실제 면면을 해체하고 전혀 다르게 상상해 보기 위하여 사진이라는 매체를 사용한다. 이들은 치정살인 사건을 탐구하면서 사건이 일어나기 전 두 남녀의 조우를 상상하거나 작은 동물의 형상과 인형이 쌓아 올려진 더미를 바라보며 참혹했던 사건 이후 이주한 난민들의 애환을 떠올리고 이라크 전쟁에 참여한 인물들의 전쟁 이후 일상적이고 심지어 평온한 삶의 모습을 그려본다.

 

여기서 사진 속 이미지들은 손탁이 지적한 바와 같이 사진 속에 존재하는 폭력에 대하여 그다지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대신 버트러가 주장한 바와 같이 사진에 대한 해석은 영속적일 수밖에 없다. 사진이 찍혀지는 순간에 포착된 리얼리티는 어쩌면 관람객의 다양한 해석과는 무관할 수도 있다. 어차피 특정한 폭력의 기억이 그 이전과 그 이후에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 설명해내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결정적인 한 순간을 통하여 폭력의 참혹함이나 드라마를 재현한다는 ‘마초적인’ 태도는 무책임하게까지 여겨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폭력의 순간을, 두려움을, 고통을 재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해석하고 삶에 반영시킬 수 있을까? 한편으로 폭력 이후의 삶을 상정하는 것은 참혹한 현실에 대한 회피라고도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때늦은’ 사진들은 결국 누가 누구에게 왜 어떠한 경로로 폭력을 행사하였으며, 그러한 폭력의 기억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 그 진행의 미묘함과 복잡함에 눈을 뜨게 한다. 그리고 단순히 특정한 가해자, 특정한 정치적, 국가적 세력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갈등의 양상, 사회적 부조리에 우리의 관심을 환기시킨다. 버트러가 손탁의 주장에 반박하면서도 동의하였듯이 폭력에 대처하는 방법은, 아니 타인의 고통을 담은 사진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차적인 일들은 바로 사건의 전모를 새롭게 바라보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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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enri Cartier-Bresson, The Decisive Moment (New York: Simon and Schuster. 1952), p. 7.

2)  Judith Butler, “Torture and Ethics of Photography,“ in Environment and Planning D 25(6) (2007), p. 957.

3) 사진이 리얼리티를 재현하는 수단으로서 지닌 한계점들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예술사진, 혹은 개념사진 작가들이 알레고리화한 바 있다. 특히 제프 월(Jeff Wall)은 <죽은 병사들의 대화(Dead Troops Talk)>(1992)에서 디지털 사진기법을 사용하여 가상적으로 소비엣 군인의 1986년 아프가니스탄 침공하는 장면을 후방에서 연기자들과 세트장에서 완벽하게 연출해내고 사진을 조합하여 거대한 역사화 스타일의 사진을 완성시킨바 있다.

4) Susan Sontag,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Farrar, Strauss, and Giroux, 2003)

5) ‘숭시’는 제주도말로 흉조를 가리키며 작가는 서러움과 한 맺힘을 달래기 위한 오사카 제주도인들이 만들었다고 여겨지는 용왕문에 관한 영상의 제목으로 사용하였다.

© 2018. Koh, Dong-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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