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 체이브 교수가 보내준 엽서
The Postcard from the Professor Anna Chave

고동연 (미술사가) 

저의 책상 위에는 박사논문 지도교수였던 아나 체이브(Anna Chave)가 2006년 10월에 보내온 엽서가 놓여 있다. 엽서에는 논문이 통과된 이후 교수가 제자에게 남긴 덕담이 적혀 있다. 워낙 말을 아끼는 교수였기에 엽서를 받았을 때 감격하기까지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 엽서를 책상 위에 놓고 적어도 몇 개월에 한 번씩은 쳐다보면서 엽서로부터, 아니 엽서에 의하여 영감을 얻게 되는 면들이 있다. 하나는 정체성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방법론적인 계보에 관한 것이다. 

첫 번째로 정체성에 관한 부분은 요사이 미술계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분들이 경험하는 일이겠지만 저 또한 제 스스로 비평가인지, 기획자인지, 연구자인지, 심사자인지 혼동될 때가 많다. 미술계가 체계화되고 그 규모가 확장되면서 각종 미술관련 기관들은 여러 일들을 ‘기획’해내느라 분주하다. 덕분에 미술계에서 글로 먹고 사는 전문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역할도 확대되었다. 물론 하는 일 자체가 변화된 것은 아니지만 미술 관련 글들이 소통하고자 하는 대상과 담당하는 역할이 다양해졌다. 결과적으로 젊은 작가 지원 명목 하에 필자가 쏟아내는 글의 종류나 글을 통하여 필자가 예술가와 맺게 되는 관계도 다변화되었다. 책상 위에 놓인 엽서는 저의 번잡해진 정체성을 다잡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대답은 한결 같다. 나는 연구자이다. 엽서는 미술사 박사 논문을 마쳤을 때의 홀가분함과 그 동안 변화해온 미술계의 지형도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준다.

두 번째로 엽서는 아나 체이브로부터 나에게로, 아니 체이브의 스승이었던 로버트 허버트(Robert Herbert)까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작가의 삶에 초점을 맞춘 사회사적인 연구방법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연쇄 고리이다. 허버트는 당시까지 주로 모더니즘의 시각에서만 다루어져 왔던 신인상주의의 주요 작가들을 문화사적인 의미에서 다룬 연구들로 유명하며, 특히 기존의 미술사 방법론에서 작가의 인터뷰나 글의 중요성을 새롭게 부각시킨 연구가이기도 하다. 체이브 또한 이러한 방법론적 계보를 이어 받아서 작가의 ‘개인적인 삶,’ 달리 표현하자면 심리적이고 심지어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을 미술사에 도입하여 왔다. 필자도 2014년 내내 『응답하라 작가들: 우리 시대 미술가들은 어떻게 사는가?』(2015년 4월 출간)라는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작가들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작가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정서적인 교감에 바탕을 두어 책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피상적이기는 했지만 일종의 사명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로부터 개인적인 즐거움도 느꼈다. 작가들의 총체적인 삶을 바탕으로 작업에 접근해야 한다는 미술사가로서 사명감과 즐거움 말이다. 엽서는 직, 간접적으로 이제까지 내게 영향을 미쳐온 미술사가들의 발자취를 떠올리게 해준다.

.... 중략 Excerpt

『퍼블릭아트』, 2015년 10월.

Dong-Yeon Koh, "The Postcard from the Professor Anna Chave," Public Art, Oct. 2015. 

© 2018. Koh, Dong-Yeon
 

This site was designed with the
.com
website builder. Create your website today.
Start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