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 근원, 그리고 이탈된 이미지들,”『이민호 개인전』

고동연

기억, 근원, 그리고 이탈된 이미지들: 이민호의 휴대용 풍경과 자화상 

La vie n'est pas ce que l'on a vecu, mais ce dont on se souvient et comment on s'en souvient. (인생이란 당신이 사는 것, 바로 그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 "인생" 중의 당신이 기억하는 것들, 그리고 기억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G.G. Marquez) 

 

현대인들은 수많은 이미지들 속에 둘러싸여 있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이중 삼중으로 재현되고 또 재현된 이미지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은 과연 일상생활에서 경험하게 되는 수많은 풍경들을 얼마만큼 제대로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을까?

 

풍경을 옮기다

이민호의 사진 작업에서 공장 굴뚝, 잔디를 심은 상자, 깃발, 바닷가 등의 풍경 이미지들은 원래의 시-공간적인 맥락으로부터 이탈하여 다양한 배경에 반복, 중첩되어서 등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관객들은 정확히 어떤 이미지가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를 알 길이 없으며, 인터넷에 떠다니는 수많은 이미지들처럼 이민호의 '휴대용 풍경'은 고향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게 된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휴대용 자화상' 시리즈에서도 작가의 코, 발, 손등 신체의 부분들과 그녀가 소장한 액세서리들만이 나열되어 있다. 게다가 작가는 관객이 자신을 알아볼 수 없도록 얼굴을 가리거나 돌리고 있다. 작가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에 해당하는 얼굴이 삭제된 채로 나머지 부분들만이 부각되어 있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근원(origin)을 잃어버린 풍경과 자화상들은 소위 문학 비평, 특히 프랑스에서 말하는 미궁 혹은 심연의 상태(mise en abime)에 이른다. 이미지가 수없이 반복되고 복사되며 반사되어 어느 것이 원본인지 복사판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고, 그 출처마저도 묘연해지게 된다.

근원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서 특정성을 잃은 풍경들은 한편으로 새로운 내러티브나 의미를 생성하게 된다. 관객들은 사진이 찍혀질 당시 굴뚝의 상태, 그와 연관된 의미나 이야기들보다 전혀 새로운 환경에 위치한 굴뚝이 불러일으키는 의미나 새로운 상징성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휴대용 풍경은 돌아 갈 곳을 잃은 일종의 '미아'나 '고아'에 해당한다. 지나치게 많은 곳을 여행하면서 변형되어 더 이상 그 근원을 잃어버린 고향 없는 풍경인 셈이다.

 

파편화된 나(작가)의 이미지

휴대용 풍경에서 풍경 사진들이 더 이상 원래적인 시/공간의 특수성을 재현해 내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녀의 인물사진, 특히 자화상 또한 그 한계를 드러낸다. 이민호의 자화상 시리즈 「휴대용 자화상」의 경우 작가의 신체 부분들은 파편화되어 과연 작가에게 속한 것들인지 혹은 그저 인물의 정형화된 신체의 부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혼란스러운 단계에 놓이게 된다.

이민호는 「휴대용 자화상」에서 붉은 땡땡이 무늬를 여성성을 상징하는 사회적 코드로 상정하고 과연 여성성이 단순히 땡땡이로 장식된 옷을 입거나 액세서리를 통해서 재현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여성성과 연관된 수많은 이미지들이 범람하는 가운데 진정으로 여성성을 재현할 수 있는 방식을 탐구하기 위한 작업이다. 하지만 이민호의 사진에서 땡땡이 무늬는 무늬로만 남을 뿐 그것은 실제 여성에 의해서 향유되기 보다는 전시용 천으로 진열장에 놓여 있다. 풍경이 더 이상 그 원래적인 맥락에서 이탈하였듯이, 작가의 자화상이 더 이상 작가의 고정적인 정체성을 재현하는 수단이 될 수 없듯이, 땡땡이 무늬도 진정한 여성성과는 무관해 보인다. 결국 '여성성'이라는 것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특정한 시각적 코드에 의해서 이해되어지고 강조되어지며 교육되어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럴 법도하다. 작가는 맥락으로부터 이탈한 풍경, 얼굴 없는 자화상, 그리고 땡땡이 무늬만 남은 여성성을 통해서 이미지의 '자기 소외'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하지만 과연 이미지들의 근원(그것의 원래 상태나 정체성)에 대하여 아직도 논할 수 있는가? 만약 그 근원 자체가 원래부터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면 더 이상 '소외' 자체가 문제시 될 이유는 없지 않은가?

© 2018. Koh, Dong-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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