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연 (미술사가)

 

“죽지 않고 돌아와서 나는 화단하고 아무 관계없이, 보이는 대로 꽃이 피면 꽃을 그리고, 그 때 꽃을 그린 것은 화단에선 결국은 타락한 작가, 일선에선 작가가 아니라 뭐 타락한 삼류, 사류 작가로 취급하던 군요. 근데 저는 봄에는 할미꽃, 또 개나리, 이것을 열심히 그렸어요.”

김종학은 1980년대 말 자신이 한때 몇몇 동료화가들이나 비평가들로부터 ‘타락한 화가’로 취급 받았다고 회고한다. 물론 한국 현대미술에서 꽃이나 자연이라는 소재 자체가 낙후한 것은 아니었다. 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거나 범 자연주의적인 입장에서 자연에 숨겨진 소위 생명력을 탐구하려는 노력은 한국 미술의 중요한 테마이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화단에서 김종학의 그림이 진보적인 아방가르드의 소명을 지켜내지 못한 소위 ‘타락’한 화풍으로 여겨진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꽃 그림들이 전통적인 풍경화나 정물화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원래 설악산 이전의 김종학의 화풍은 우리나라 첫 전후 세대 추상작가들에 견줄만한 것이었다. 김종학은 1961년 유네스코 세계청년화가 파리 대회에 박서보, 하인두, 정상화, 김봉태 등과 함께 참여하는 등 젊은 추상작가들 사이에서는 꽤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화가였다. 하지만 그가 파리, 뉴욕, 그리고 설악산 등지로 유학과 제 2의 화가 인생을 도약하면서 1980년도에 내놓은 새로운 화풍은 이전까지 본인의 예술적 실험이나 당시 한국 화단의 흐름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전통적인 표현주의 기법을 풍경화나 정물화에 접목시킨 그의 화풍은 1980년대 주도적이었던 추상 계열의 한국식 미니멀리즘이나 구상 계열의 민중 미술, 그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작가 스스로도 암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과연 현대미술에서 진보적, 혹은 실험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 현대미술에서 진보나 보수, 혹은 복고적 성향은 과연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내려지게 되는 것인가? 

정확히 말해서 김종학의 작업에는 소위 진보적인 속성과 회귀적인 속성들이 혼재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은 꽃이라는 소재, 그림을 그리는 방식, 그리고 작가의 미학적 태도에 일관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김종학은 자신의 그림을 꽃이 자라나는 과정에 비유한다. 작가에게 자연은 과거와 미래, 오래된 것과 새로 태어날 것 들 사이에 치열한 경쟁구도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소재이어 왔다. 

 

김종학이 즐겨 그리는 일년생 꽃들의 경우 생물이 태어나서 자라나고 이내 시들어 가는 과정을 빠른 주기로 보여준다. 그런데 김종학의 그림에 등장하는 꽃들은 이제 완전히 봉우리를 피어서 지기 직전의 꽃들이다. 소위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에 놓여 있는 꽃들인 것이다. 특히 거대한 폭의 캔버스(도판 1)에 옮겨진 설악산 풍경에서 얼기설기 줄기가 엮여 있는 엉겅퀴와 꽃들의 모습은 모든 식물들이 저마다 살아남기 위하여 대지의 각종 영양분과 태양의 빛을 향하여 한껏 싸움을 벌이고 있는 듯하다. 

 

작가는 특정한 꽃을 소재로 잡기 보다는 화면을 꽃들로 빼곡히 채운다. 소위 나무들의 밀림과 같이 꽃들의 밀림이 재현된다. 그리고 그는 각각의 꽃들보다는 엮여 있는 꽃들의 집합체가 만들어 내는 어수선한 상태를 강조한다. 따라서 꽃의 강렬한 색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도록 만들지만 동시에 안간힘을 다하여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자연의 섭리를 인식시켜 주기도 한다.

 

만약 꽃 풍경이 자연 속에 내재된 ‘투쟁’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김종학의 제작 과정도 짙은 색의 대지에서 혹은 대기에서 경쟁적으로 색상이 드러나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그의 꽃 이미지들은 작가가 화폭 위에 덧붙인 것이 아니라 바탕의 어두운 색상을 헤치고 생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학은 인상주의나 표현주의자들과 같이 색상을 팔레트가 아닌 화폭에서 병치를 통해서 섞어 내고는 하는데 바탕색으로 진한 색상을 선호하여 왔다. 분홍 벚꽃들이 만연한 설악산 풍경(도판 2)에서 배경으로 작가는 짙은 붉은 색을 선택하였고 밝은 분홍색과 흰색은 흡사 혼돈된 붉은 대기에서 점차로 모습을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두텁게 발라진 밝은 분홍색과 흰색은 화면을 그득 메운다. 그리고 만발한 벚꽃의 모습은 벚꽃이 지기 직전의 마지막 화려한 모습에 해당한다. 

 

김종학의 반복되는 설악산 시리즈는 결국 시간에 관한 것이다. 전통적인 동양화에서 다루어온 사계의 개념을 소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동양화에서 주로 각 식물이 담고 있는 도덕적이고 상징적인 의미가 강조되었다면 김종학의 작업에서는 일종의 삶에 대한 회환, 투쟁, 죽음의 메시지들이 강조되어 있다. (그는 입버릇처럼 화가를 생사를 건 결투를 마치고 온 신들린 사람에 비유하고는 한다.) 그리고 그러한 주제들은 자신의 투박한 붓자국들과는 대조적으로 잘 계산된 색상의 대비를 통해서 표현한다. 예를 들어 푸른 초승달의 풍경(도판 3)에서 작가는 검은 바탕 대신에 바탕의 붉은 색상과 진한 푸른 색상이 절묘하게 교합된 색상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바탕 대신에 나뭇가지를 검은 색으로 그려 넣는다. 한결 붉은 색상과 푸른 색상간의 대비 효과를 강조하기 위하여 하늘색의 초승달을 나무줄기 사이에 걸쳐서 재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관객들은 붉은 기운과 푸른 기운이 대조를 이룬 세련된 추상화의 한 면모를 경험하게 된다. 

물론 김종학에 대한 미술사적 평가는 작가 스스로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시간이 걸리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고 혼재된 속성을 지닌 김종학의 미술이 21세기에 더욱 애호가들과 비평가들의 관심을 끌게 되는 것은 전후 한국 미술계가 진보의 개념을 지나치게 편파적으로 이해하여 온 것에 기인한다. 물론 꽃이라는 소재나 정물화, 풍경화, 그리고 유화라는 매체 자체가 모두 보수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종학의 강렬한 색상의 배합은 전통적인 우리 고 미술이나 서구의 형식주의와도 차이를 보인다. 게다가 작가가 주장하는 끝없는 극복과 투쟁의 미학은 그의 작업을 특정한 진보나 보수, 혹은 서구나 전통 미술과의 단순한 연결고리에서 파악하지 못하도록 한다. 

70대의 김종학은 지금도 놀라운 집중력으로 신들린 자와 같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과의 투쟁을 계속한다. 진보와 보수, 창조와 모방이라는 서로 다른 축들 사이에서 그는 자신에게 가장 직접적이고 처절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과연 자연은 우리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인가?

 

과연 창조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창조와 모방의 관계는 무엇인가? 김종학의 꽃 그림들은 한국 미술에서 구상과 추상, 그리고 진보적인 것과 보수적인 것 간의 차이가 지닌 모호한 경계선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Dong-Yeon Koh, "Jonghak Kim's Seorak Mountain Landscape," Jonghak Kim, Gallery Yeh, 2010.

김종학의 설악산 풍경
Jonghak Kim's Seorak Mountain Landscape 

© 2018. Koh, Dong-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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