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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소프트 파워”: 1950년대와 1960년대 음식문화와 미국 팝아트

고동연

1. 1959년 주방 토론과 ‘미국의 소프트 파워’“미국이 위대한 점은 가장 부유한 소비자로부터 가장 가난한 소비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동일한 것을 구입하는 전통을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텔레비전을 보게 되면 코카콜라가 나오는데 대통령도 리즈 테일러도, 당신도 [동일한 코카콜라를] 마시고 있다는 것을 상상해보라.” (앤디 워홀,『앤디 워홀의 철학』(1975) 1)

 

“나는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였으면 좋겠다. 브레히트는 그러한 일을 공산주의 제체 하에서 이루고자 하였다. 러시아에서는 그것을 정부 주도하에서 이루고자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엄격한 정부의 통제 없이도 그러한 일들이 저절로 일어난다. 만약 그러한 일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도 가능한 것이라면 공산주의자들이 없이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모든 사람들은 외향적으로나 행동하는 데에 있어서 점자로 더 획일화 되어간다.” (워홀, "진 스웬슨과의 인터뷰"(1963) 2)

 

1960년대 미국 팝아트의 대표적인 작가로 여겨지는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발언들은 그 의미가 모호하거나 양가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홀이 무관심하게 내던지는 발언들은 전후 미국 대중문화, 혹은 소비사회를 관통하는 주요한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 위의 인용에서 워홀은 유명 영화배우만큼이나 미국의 대중 소비문화를 대표하는 아이템으로 코카콜라를 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워홀은 두 번째 인용에서 미국 대중소비 문화의 획일성에 대해서도 암시하고 있다. 아니 적어도 그것에 대하여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이전에 미국 대중소비문화를 소련의 공산주의나 전체주의에 빗대고 있다. 즉 그는 미국의 대중문화와 소비문화가 소련과 같이 강력한 중앙집권적 사회 체제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라도 미국 사회를 얼마든지 획일화시켜 가고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냉전시대 미국의 대내외적인 정책이 지속되고 있을 당시인 1960년대 초 워홀의 이와 같은 발언은 1959년 당시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과 소련의 수상이었던 니키타 흐루시초프(Nikita Khrushchev) 사이의 유명한 ‘주방토론(Kitchen debate)’을 연상시킨다. 냉전 시대 미국은 소련에 대항하여 무기나 강력한 국가 정부의 힘보다는 ‘미국식 삶의 방식’을 대외적으로 선전하여 왔다. 조셉 나이(Joseph Nye Jr.)의 고전적인 이론을 빌리자면 ‘소프트 파워’에 근간한 미국의 전후 외교 정책은 어떻게 하면 무력적인 힘 대신에 문화적인 혜택을 통하여 공산주의의 전 세계적인 확장을 저지시킬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3)특히 전쟁 직후 유럽과 비서구권 국가들의 궁핍한 현실, 그리고 미국 소비재 산업의 약진에 따른 전 세계적인 역사적 현실에 비추어 보아 대중소비문화에 근간한 미국의 대외적인 정책은 당시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여겨졌었다. 4)

 

1959년 부통령이었던 닉슨은 소련의 수상이었던 흐루시초프와의 ‘주방토론’에서 미국의 소비자들은 소비엣 공화국의 인민들과는 달리 소비자로서의 다양한 선택권을 누리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는 미국 중산층 가정의 실내를 모방한 전시 디스플레이, ‘오늘과 미래의 주방(Today’s Kitchen and Tomorrow’s)’의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이 박람회가 러시아 인민들을 엄청나게 놀라게 할 것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관심을 끌기는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양성,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는 권리, 즉 미국인들이 몇 천 명의 다른 건축시공자들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삶의 즐거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통일된 정부가 공식적으로 ‘우리는 단일한 형태의 집을 제공하겠다’라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결정하는 식을 원치 않습니다. 그것이 [미국과 소련의] 차이입니다.”  5)

 

닉슨의 견해는 미국 대중소비문화를 전적으로 ‘지루하다’던지 ‘반복적’인 것으로 이해하였던 워홀과는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서로 다른 문화적 견해들에도 불구하고 워홀과 닉슨 모두 미국의 이상화된 삶의 방식을 음식문화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닉슨의 ‘엄살’에도 불구하고 음식문화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소프트 파워 외교 정책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닉슨의 러시아 방문 중 박람회에 전시된 미국의 인스턴트 음식은 페어가 열리는 48일 동안 러시아인들의 눈과 입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6)

 

냉전 시대 소련의 군사력, 우주 정책에 반대하여 미국이 추진하였던 ‘미래의 주방’정책은 냉전시대뿐 아니라 그 후에도 미국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왔다. 따라서 전후 ‘풍요로운’ 미국사회를 재현하여 온 미국의 팝아트 작가들이 미국적 실내, 특히 미국의 음식문화에 집중하여 온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평소에 미국식 누드, 미국식 정물화를 부르 짖어온 톰 웨셀만(Tom Wesselmann)은 1962년 <정물화 넘버 21>에서 현대 미술을 상징하는 몬드리안의 그림 옆에 미국 맥주, 식빵, 그리고 코카콜라를 그려 넣었다. 가장 미국적인 정물화를 완성하기 위하여 세잔식의 전통적인 정물화의 소재 대신에 각종 인스턴트 음식, 냉장고가 있는 미국적 실내 풍경, 그리고 음료수 캔들이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음식과 연관된 소재들은 워홀뿐 아니라 로이 리히텐슈타인 (Roy Lichtenstein), 클레즈 올덴버그 (Claes Oldenburg), 서부 팝의 대표적인 웨인 티보 (Wayne Thiebaud), 에드 루쉐 (Ed Ruscha) 등 대부분의 주요 팝아트 작가들의 작업에서 빈번하게 사용되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2. 고를 수 있는 자유: 워홀의 캠벨 수프(1962-68)와 ‘미국 슈퍼마켓’(1964)

1960년대 워홀의 작업에서 유명 연예인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음식이나 주방과 연관된 상품 이미지들이다. <복숭아의 반쪽>(1960), <코카콜라>(1960), <뽀빠이>(1961), 그의 첫 <캠벨 수프 캔> 회화 시리즈(1962), 그리고 팩토리 내부를 은색 풍선과 알루미늄 포일로 장식한 <은색 구름>(1966)의 기록 영화에 이르기까지 워홀은 일상적으로 가정에서 사용되는 각종 인스턴트 식료품, 음료수, 주방재료들을 그의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다루어 왔다. 7) 캠벨 수프 캔은 그 중에서도 회화, 프린트, 오브제의 다양한 매체와 형식을 통하여 1960년대 동안 가장 여러 차례 등장하였다. 8)워홀의 캠벨 수프 회화는 1962년 페러스 화랑에서 열린 그의 첫 개인전에 선보인 이래로 프린트의 방식으로, 그리고 같은 해에 라벨이 뜯긴 잉크 드로잉으로 각각 제작되었다.

 

 캠벨 수프는 전후 미국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캠벨 수프와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라는 용어가 생겨날 정도로 일반인들의 간식이나 식사대용으로 사랑받았다. 특히 1930년대 캠벨 수프의 효시격인 토마토 수프가 소개된 이래로 1950-60년대 이미 200가지 이상의 수프가 개발되었고, 미국에서 감기를 치유하는 가장 모성애적인 상징 음식으로 여겨지는 ‘치킨 누들 수프’ 또한 원래 캠벨의 ‘치킨과 누들수프’를 라디오 방송에서 잘못 발표하면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워홀의 첫 개인전에서 32점의 캠벨 수프 회화가 전시장 한 벽면을 그득히 메웠다. 이후 그는 ‘100개,’ ‘200개’의 캠벨 수프를 차례로 그리게 되는데 다양한 종류의 캠벨 수프 이미지는 닉슨이 ‘주방토론’에서 주장한 미국 소비자들의 다양한 ‘선택의 폭’을 연상시킨다. 또한 워홀은 1964년에 열린 그룹전 ‘미국 슈퍼마켓’에서 캠벨 수프의 오브제를 광고 사진에서와 같이, 혹은 슈퍼마켓에서와 같이 쌓아 놓고 있다. 9) 1931년에 나온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21개 수프”라는 캠벨 수프의 광고 문구는 무엇보다도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서 다양한 종류의 캠벨 수프를 고를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높게 쌓인 탑은 물건의 풍부함을, 소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서 미국식 삶의 방식을 채택하기를 원하는 당시 미국과 다른 국가 국민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상품을 높게 쌓아 올리는 방식은 미국의 풍요로움을 상징할 뿐 아니라 점원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소비자가 상품을 직접 보고 선택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 일으켰다. 소비자들이 직접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생각은 1950년대와 1960년대 미국에서 급격하게 발전되었던 패스트푸드 식당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패스트푸드 식당은 종전의 레스토랑과는 달리 점원이 자리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고객들이 자신의 자리와 음식을 고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당시에는 획기적인 영업 전략으로 여겨졌었다. 10) 이러한 변화들은 상징적인 의미에서는 ‘미국식’ 삶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받아 들여졌었다.

 

그러므로 1950년대와 1960년대 인스턴트 음식의 대중소비화 시대를 맞이하게 되면서 외향적으로 선택의 종류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상품을 배열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다이너(diner)와 해변가 카페테리아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찍이 1950년대 말부터 미국의 일상적인 풍경을 화폭에 담아 온 웨인 티보의 <파이 진열대>(1963)에서도 투명한 카운터 너머로 과일이나 디저트, 캔디 등의 디저트들이 종류별로 나란히 배열되어 있다. 서구 팝아트의 선구자로서 티보의 작업들은 캘리포니아 해변의 외광을 연상시키는 달콤하고 명쾌한 색상과 광고판에서나 사용되는 그래픽적인 그림자 처리 효과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티보의 작업에서 디저트 배열 방법은 원래는 식료품 공장에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이러한 디스플레이 방법은 카운터 너머로 가지런히 놓인 케이크들을 직접 비교해보면서 고를 수 있는 시각적 즐거움을 충족시켜 주기 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후 미국 대중소비사회에 등장하는 인스턴트 음식들은 과연 닉슨이 설복한 바와 같이 미국 소비자들의 선택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있는가? 상품의 종류가 증가하는 것과 선택의 다양성은 어떠한 관계를 지니는가? 그리고 이에 대하여 워홀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결론적으로 워홀이 미국 대중문화를 다양한 것으로 보았다고 주장하기는 힘들다. 적어도 표면적으로 워홀은 단조로움, 획일성, 무개성, 깊이의 부재와 같이 병적인 현상들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워홀의 인용을 통하여 워홀이 의도하는 바에 대하여 짐작하기 보다는 궁극적으로 닉슨이 주장하는 다양성이 내포하고 있는 아이러니, 모순점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면 ‘우리가 동일한 텔레비전을 보고 코카콜라를 마신다’는 워홀의 발언은 결국 풍부한 선택의 폭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다양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방토론에서 닉슨이 강조한 소비문화의 다양성은 오히려 사회적 긴장감이나 불만족한 사회적, 정치적 현안들을 덮어버리는 정치적 책략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3. 주방의 ‘과학화’와 여성의 공간: 올덴버그의 <도르마이어 믹서>(1965)

1959년 ‘주방토론’에서 부각된 또 다른 쟁점은 무엇보다도 미국식 주방의 합리적인 인테리어와 ‘첨단’ 주방용품이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의 주방문화는 과학적이고 위생적인 미국식 삶의 방식을 선전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1953년 미국과 핀란드와의 경제 교류과정에서 열린 ‘미국의 집과 장식적인 목적의 디자인(American Design for Home and Decorative Use)’전에서 깔끔한 리뇰리움이 깔리고 현대화된 L자형과 U자형의 주방 레이아웃은 관람객들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뿐만 아니라 1950년대와 1960년대 주요한 주방 가전제품들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개발되었다. 재네랄 일렉트릭사는 1950년 스페이스 메이커 냉장고를 출시한 이래로 1956년 자석이 달려있는 직사각형 냉장고를, 그리고 1957년에는 현재의 형태와 비슷한 크기와 방식의 냉장고를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함께 당시 인기가 있었던 가전제품들로는 메이태크에서 만드는 디시 워셔, 스팀다리미, 그리고 4개짜리 토스터 등이 있으며, 1960년대에는 전자레인지가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연관하여 일상용품들을 거대한 조각품이나 공공조각으로 변형시켜 온 클레즈 올덴버그는 디저트를 요리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주방용품인 <도르마이어 믹서>를 부드러운 비닐 소재로 변형시켰다. 원래 올덴버그는 물체의 본래적인 재질감을 변화시키고 물체를 전혀 다른 맥락에 위치시킨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와 비교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다른 팝아트 작가들에 비해서도 미국식 소비문화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스웨덴 출신으로, 그리고 사회학 전공자로서 그의 오브제 해석방법은 도시 개발, 소비문화, 성문화 등에 대한 그의 번뜩이는 해석을 담고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도르마이어사는 커피 포터, 토스터, 일반 믹서 등을 만들어 내는 대표적인 미국의 가전제품 회사였다. 1953년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터>에 게재된 도르마이어사의 선전 문구들은 합리적인 쿠킹 방식을 제안하고 있으며, 가전제품을 구비하게 되면 전문적인 요리 솜씨를 갖추거나 비싼 재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브라질의 커피나 유럽의 디저트에 버금가는 음식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전후에 개발된 주방도구들은 편리함뿐 아니라 원산지의 고급문화를 미국 중산층이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소위 고급 음식문화의 ‘민주화’에 일조하고 있는 샘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주방 용품들은 결국 엄마들의 창조적인 요리의 욕구는 충족시키면서도 단순 가사 노동의 분담을 덜어주는 것으로 인식되어졌다. 빵이 구워지면 토스터가 저절로 올라오게 되어 있는 자동 시스템은 주부가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가사 노동을 병행 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었다. 또한『기계적인 신부』(1993)의 저자 엘렌 룹톤(Ellen Lupton)은 가전제품 선전들에서 엄마의 손이 일종의 기계의 손에 해당하는 커피포트의 손잡이와 시각적으로 결합되게 되는데 가사일도 과학화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은연중에 암시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11)

 

하지만 실상 1950년대 주방의 과학화를 선도하는 역군으로서 가전제품들은 미국의 여성해방과 연관하여 양가적인 의미를 지닌다. 토스터기의 온도와 커피포트의 지시를 따라, 오븐에 인스턴트 제조법에 따라 근사한 요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미국 주부들이 가사노동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덴버그의 도르마이어 오브제 작업 관련 드로잉에 그려진 여성의 유방 이미지는 주방, 주방 용품의 또 다른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 있어서 의미심장하다. 믹서의 돌아가는 부분을 늘어진 여성의 유방으로 변형시킨 올덴버그의 드로잉에서 중성적이고 과학적인 주부의 이미지는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가전제품의 기계 부분은 여성의 성기(실은 과장된 상태로)와 유사한 형태로 그려져 있다. 물론 올덴버그가 여성차별주의적인 시점에 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오히려 여성차별주의적인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올덴버그의 작업이 보는 이로 하여금 1950년대 주방의 과학화가 지닌 또 다른 사회적인 의미에 대하여 물음을 던지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과연 첨단화된 주방은 여성과 같이 타자화된 존재들을 남녀차별적인 시선들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가?

 

1950년대와 1960년대 과학의 주방화와 연관하여 자주 언급되는 문구들: “주부가 되는 것에 대하여 변명을 하지 말고,” 여성은 이제 그들에게 주어진 “경제학자, 영양 전문가, 사회학자, 심리학자, 그리고 교육자”로서의 복합적인 사명들에 대하여 인식하여야 한다. 12) 그러나 1950년대의 ‘복합적인’ 사명을 띠고 있는 주부들에 대한 강론은 결과적으로는 여성차별주의적인 관점에서 갖가지 수사어구를 사용하여 여성의 역할을 ‘집’안으로 귀속시키도록 부추긴다. 주방의 과학화에 이바지한 가전제품들은 모순되게도 여성의 사회 참여를 주방이라는 영역으로 한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4. 플라스틱! 플라스틱!: 변형의 미학과 음식문화, 루쉐의 <스팸>(1961)

미국에서 전쟁 후 인스턴트 음식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빼 놓을 수 없는 주요한 현상으로 원재료를 다양하게 변형시키고 보강시키는 화학적인 공정을 들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미 전쟁 전에 기존의 젤라틴을 파우더로 만들고, 미국의 중산층 가정에서도 쉽게 젤리를 요리할 수 각종 방식이 개발되었다. 뿐만 아니라 인스턴트 음식의 개발을 위해서 원재료의 보존 상태를 변화 시켜서 보존하는 일이 더 없이 중요해 졌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온에서는 액체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재료를 최대한 고체로 남아 있게 한다거나 반대로 고체를 액체의 상태로 유지시킬 수 있는 각종 공법들이 개발되었다.  

 

에드 루쉐의 <선 메이드 레이진>(1961)에서 건포도는 습기를 빼고 당분을 첨가한 후에 진공포장하여 만들어진 제품이다. 물론 습기를 제거하여 음식을 장시간 보존하는 방법은 모든 사회와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하지만 원재료의 정체성을 변형시키고 더욱 맛있어 보이도록 첨가물을 집어넣는 다양한 공정들이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적극적으로 개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루쉐의 <스팸>(1961)의 경우에도 얼핏 보면 자연스러운 고기를 원재료로 하고는 있으나 시각과 미각을 더욱 보강하기 위하여 색소나 보조 첨가제가 사용되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일반인들이 손쉽게 요리에 접근하고 가격을 낮추면서도 본래적인 재료의 상태를 완전히 변형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원재료가 지나치게 많이 변형될 경우 순수한 자연의 상태로부터 벗어난 음식이라는 비판과 인위적인 첨가물에 대한 두려움이 가중되어서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편리함과 변형의 미학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음식 산업의 중요한 관건으로 떠올랐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대중성, 상업성을 위하여 원재료를 변형시키는 일, 혹은 원재료의 정체성을 혼돈시키는 공정들이 음식문화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1950년대에 각종 소비재 상품을 만들어 내는 데에 사용되었던 재료로서의 ‘플라스틱’과 유용성이나 변형성을 의미하는 형용사로서의 ‘플라스틱’이라는 단어는 전후 미국 대중소비문화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가공의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인스턴트 음식은 재료의 본래적인 속성보다는 그것이 변형되어져서 빚어지는 효과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에서 플라스틱과도 비견될만하다.

 

플라스틱은 지나치게 변형이 용이하다는 면에서, 원재료의 정체성이 혼돈된다는 점에서, 전후 미국의 소비사회를 상징하는 물질이나 형용사로 언급되어지고는 하였다. 미국 젊은 세대의 자기 정체성을 문제시한 영화 <졸업(The Graduate)>(1967)에서도 플라스틱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주인공 벤자민 브라독(더스틴 호프만 분)의 아버지뻘 되는 성공한 가족 친구는 벤자민에게 “나는 그저 너에게 한 단어만 이야기 해주겠다. 한 단어, 플라스틱. 플라스틱의 미래는 밝다.” 알쏭달쏭한 이 대사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지만 문화연구가 제프리 마이클레는 무엇보다도 플라스틱에 관한 대사 부분이 호프만 세대에게 윗세대가 전해준 조언이었다는 점에서 전후 미국 젊은 세대가 처해 있었던 상황을 요약해주는 메시지로 해석한다. 13)

 

<졸업>에서 벤자민은 그야말로 사회로 나오기 직전에 방황하는 청춘으로 묘사된다. 그는 특별히 하고 싶은 일도,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에 대한 확신도 없는 무기력한 젊은 세대로 그려진다. 그러나 벤자민의 수동적이고 우유부단한 캐릭터는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1960년대 초 미국의 중산층의 젊은 세대가 공통적으로 직면하게 되는 문제에 해당한다. 여기서 플라스틱은 자신의 정체성보다는 기존의 틀에 맞추어서 빠른 시간에 효율적으로 자신을 변형시키는 능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전후 거대해진 기업문화와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미국의 젊은 세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4)

 

또한 플라스틱은 1950년대 다양성과 효율적인 관리를 중시하는 미국 주방과 음식문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재료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비평적인 관점에서 보면 플라스틱은 벤자민에게 조언을 한 인생 선배의 말처럼 전후 미국의 젊은이들이 급속도록 발전된 인스턴트식품과 같이 본래적인 속성을 잃어버린 채, 혹은 생각할 틈도 없이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살기만 해야 하는 병리적인 상태를 가장 효과적으로 대변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결국 전후 미국 인스턴트식품이 제공하는 다양성은 자연의 본래적인 상태를 무시하고 무개성하고 정체성을 잃은 음식을 만들어 냄으로써 얻어진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5. 워홀로 돌아오다: 미국 소프트 파워의 계속되는 신화

마지막으로 워홀의 중요한 인용을 다시 떠올려 보자. 워홀은 누차 자신이 비판적인 의도를 지니지 않는 작가라고 주장하여 왔다. 15) 다른 팝아트 작가들의 인터뷰들에서도 이러한 입장은 반복되었다. 그렇다면 워홀, 그리고 1960년대 미국 팝아트 작가들의 대부분은 음식문화의 아이콘들을 사용하여 미국 대중소비문화를 비판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은 진정으로 ‘가장 부유한 소비자로부터 가장 가난한 소비자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동일한’ 음식과 음료수를 구입할 수 있게 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팝아트 작가들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이 급속도로 발전된 1950년대와 1960년대 초 미국 경제의 풍요로움에 대하여 가장 이율배반적으로 반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 인스턴트나 패스트푸드와 연관된 이미지들, 예를 들어 코카콜라나 맥도날드의 기업 로고는 1960년대는 물론이거니와 현재까지도 미국식 삶의 가장 대표적인 아이콘들이다. 하지만 미국의 대중소비문화의 이미지들을 그대로 옮겨 그린다는 것 자체가 1950-60년대 미국의 미술계 상황에서는 실은 도발적이다. 특히 어떠한 도덕적인 메시지도 최대한 배제하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접근한다는 방식은 예술적 의도에 대한 관객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풀어 말하자면 가장 일상적이고 친숙한 소재들을 가장 평이하거나 표피적으로 잡아냄으로써 일상에 대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표피적인 화면 이면에 자리 잡은 전혀 다른 해석들을 각자가 유추해 낼 수 있도록 부추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워홀의 인용에는 명민한 구석이 있다. 같은 문장 안에 리즈 테일러, 미국의 대통령, 그리고 코카콜라를 함께 인용한 경우 결국 획일화된 다양성이 미국의 인스턴트 음식문화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얼마 전에 작고한 리즈 테일러와 워홀이 즐겨 그렸던 마릴린 몬로는 모두 정형화된 삶을 요구하였던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마지막 스타들이자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다. 자의건 타의건 대중들에게 흥밋거리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했던 그들의 굴곡진 삶과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그러나 그들을 후대에 개성 있는 배우나 인간으로보다는 대중매체 시대의 비극적인 희생양으로 더욱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나아가서 모두가 원하는 상품, 삶, 그리고 정치적인 입장을 마음대로 고르고 유지할 수 있다는 환상 뒤에는 결국 모두가 특정한 대중소비문화와 자본주의 체계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켜준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실은 음식문화 뿐 아니라 심지어 정치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워홀, 그리고 마찬가지 맥락에서 팝아트 작가들의 의도를 지나치게 비판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이다. 그들의 반응은 대부분 그들이 자라온 전쟁 직후 미국의 경제적, 사회적 현실과 뉴욕 미술계의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흥미로운 점은 여러 사회와 문화권들이 아직도 미국식 사는 방식에 대한 경의(homage)를 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1960년대 이후 학계를 주름 잡았던 비평이론들(여성이론, 동성애 이론, 기호학), 그리고 1980년대 이후 문화연구들은 1950년대와 1960년대 획일화된 미국 대중소비문화에 대하여 대안적인 해석들을 내놓았다. 16) 그러한 반론들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인스턴트 식음료, 패스트푸드 기업 아이콘들이 아직도 미국식 삶의 방식을 대변하는 예들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중국 전역에 퍼트려 가는 미국 자본의 침탈을 풍자적으로 비꼰 렌 지안의 행위예술 ‘대중소비’는 1993년 4월 28일, 북경에 맥도날드 가계의 오프닝과 함께 열린 바 있다. (당시 북경 맥도날드 점포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이외에도 한국식 팝아트에서도 맥도날드나 코카콜라의 이미지는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제는 식상해진 신자유주의 담론이나 문화 비판이론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몇몇 이미지들을 손꼽아 보자면 코카콜라나 맥도날드와 같이 1950-60년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간 미국의 식음료 문화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21세기 전 지구화된 시대에 미국의 음식문화의 아이콘들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한편으로 전지구화 시대에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요구, 개인의 다각적인 삶의 질을 새롭게 재고하려는 노력들, 환경 이슈들과 발맞추어 미국의 식품사들도 변신을 꾀하여 왔다. 게다가 빠르게 변해가는 국제 정세에서 미국이 이전과 같은 정치적, 경제적 힘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소프트 파워, 특히 음식문화를 통하여 퍼져나간 미국식 삶의 방식은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흠모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미국식 삶의 방식은 그것이 지속적으로 경배되어야 할 대상이건, 수정되어야 할 대상이건 간에 우리의 일상적인 풍경에 각인되어 있는 각종 패스트푸드 아이콘들처럼 쉽사리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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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Andy Warhol, The philosophy of Andy Warhol: from A to B and back again (San Diego: Harcourt Brace Jovanovich, 1975), pp. 100-101.

2) Andy Warhol, “What Is Pop Art?,” interview by Gene Swenson, Artnews (November 1963); I'll Be Your Mirror: The Selected Andy Warhol Interviews (New York: Da Capo Press, 2004), p. 16.

3)Joseph Nye jr., Soft Power: The Means to Success in World Politics (New York: Public Affairs, 2004).

4)미국의 냉전시대 대외 문화정책에 대한 잘 알려진 논고로는 세르지 기보(Serge Guilbaut)의『어떻게 뉴욕이 현대미술을 뺐었는가(How New York Stole the Idea of Modern Art)』(1985)가 있다. 하지만 1950년대와 1960년대 미국의 대외 정책에서 순수미술이 지니는 부분은 디즈니 영화, 재즈, 소비재 상품과 같은 대중소비문화에 비하여 상당히 미비하였으며 추상표현주의 작가들과 정치와의 관계 또한 연구자가 주장하는 바에 같이 광범위하거나 일관된 것은 아니었다.

5)David Halberstam, The Fifties (New York: Villard Books, 1993), p. 724에 인용.

6)모스코바에서 열린 박람회 미국관에는 최신 주방용품과 가전제품이 완비된 부엌이 선보였다. 또한 각종 편의점의 음식, 재봉들, 하이파이 음향 시스템, 컬러텔레비전, 22개의 자동차, 그리고 디즈니 영화관들이 구비되었고 박람회 기간 동안 슈퍼마켓에서는 방문자들에게 무료 코카콜라가 제공되었다.

7)워홀이 1960년대 초 만화 등의 이미지를 함께 그리다가 급작스럽게 음식이나 유명 연예인의 이미지로 전환하게 된 배경에는 당시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이미 만화 이미지로부터 미술계의 각광을 받게 된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리히텐슈타인은 1962년 레오 카스텔리 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었다.

8)워홀은 캠벨 수프를 소재로 선택하게 된 계기를 지난 20년간 그가 줄곧 점심에 캠벨 수프를 즐겨 먹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Andy Warhol, “What Is Pop Art?,” p. 18.

9)슈퍼마켓 전시회에서 워홀은 캠벨 수프 회화는 1500불에 그리고 자신의 사인이 들어가 있는 실제 캠벨 수프는 6불씩에 판매하였다.

10)미국에서 1950년대는 패스트푸드와 거대 푸드 체인의 전성기였다. 1950년에 문을 연 던킨 도넛을 시작으로 켄터키 프라이드치킨(1952), 맥도날드(1955), 버거킹(1954, 57), 피자헛(1958) 등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패스트푸드 브랜드 등이 미국 전역에서 생겨났다. 보다 편리하고 빠른 음식을 선호하는 당시 미국인들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었다. Ch. 6 “Food and Drink,” in William H. Young & Nancy K. Young, The 1950s (Santa Barbara, CA: Greenwood Publishing, 2004), pp. 95-112.

11)Ellen Lupton, Mechanical Brides: Women and Machines from Home to Office(New York: Smithsonian Institution, 1993), p. 8.

12)Ellen M Plante, The American Kitchen 1700 to the Present (New York: Facts on File, 1995), p. 283.

13)1950-60년대 미국의 주요한 소설가, 운동가이자 문학 비평가인 노만 마일러(Norman Mailer)는 미국 사회가 점차로 자연적인 물질로부터 벗어나서 합성수지, 플라스틱과 같은 인위적인 물질에 중독되었다고 비난하였다. Jeffrey L. Meikle, “Material Doubts: The Consequences of Plastic,” Environmental History vol. 2 no. 3 (July 1997), pp. 278-279에 인용.

14)유사한 맥락에서 프랑스의 문학 비평가이자 철학자인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자신의 에세이 “플라스틱”(1957)에서 플라스틱을 일종의 문화적인 현상을 현현하는 것으로, 단순한 재질의 끊임없이 변형된다는 그 개념 자체를 현현”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Roland Barthes, “Plastic” (1957) in Mythologies (1973); reprinted in The Everyday Life Reader, ed. Ben Highmore (New York: Routledge, 2002), p. 306.

15)“나는 내 예술에서 미국을 대표한다고 느낀다. 그러나 나는 사회 비평가는 아니다. 나는 그저 나의 회화에서 네가 가장 잘 아는 것들을 그릴 뿐이다.” Andy Warhol from “My True Story,” interview with Gretchen Berg, reprinted in I'll Be Your Mirror, p. 88.

16)이와 같은 연구들은 주로 여성학자들이나 여성학을 위주로 진행된 문화연구의 분야에서 진행되어져 왔다. 가장 고전적인 연구로는 The Other Fifties: Interrogating Midcentury American Icons. ed. Joel Foreman (Chicago: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97)가 있다.

© 2018. Koh, Dong-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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