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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순정’ 의 작가: 이완과의 인터뷰

고동연​

 

 

2011년에 국내에서 오브제 작업을 흥미롭게 전개하는 작가들을 섭외하고자 하였고 그러한 계기로 나는 이완 작가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내가 담당하고 있던 작가 지원기금 때문에 심사위원과 작가로 직접 뵈었다. 이완 작가의 오브제가 지나치게 강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고 느낀 적도 있었고, 과연 왜 저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서 오브제를 재생산 해야 하나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꾸준히 오브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점이 내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한 주제가 다른 주제로 옮겨가는 과정이 매우 체계적이라는 인상도 받았다. 작가 프레젠테이션을 보면서 이 작가에 대하여 더 많이 알고 싶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앞으로 이 작가가 작품을 어떻게 전개시키게 될지에 대하여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이번 인터뷰는 작가에게는 중요한 중간 점검의 계기가 될 것이다. 작가가 어디에서 와서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더 면밀히 살피기 위하여 인터뷰를 진행하고자 한다. (고동연 2013년 2월)

 

고동연(KOH Dong-Yeon): 작가님, 우선, 개인전 축하 드립니다. 그리고 인터뷰할 기회를 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그럼 일단 오브제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지요. 작가님은 어떠한 계기로 오브제를 사용하기 시작하셨는지, 그리고 맨 처음 사용한 오브제는 무엇이었는지요?

 

이완(LEE Wan): 감사합니다. 저도 선생님과 인터뷰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처음 저의 관심은 오브제 자체는 아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관심 있어하는 것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많이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고 놀이기구 시리즈를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거대한 세상이 마치 놀이동산 같다고 느꼈고 제가 인생에서 경험하여 온 불가항력적인 상황들이 놀이동산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왜냐면 스릴 있는 놀이기구에 올라타면 우리는 거의 대부분 스릴(thrill)을 느끼죠. 놀이기구 마다 스릴의 클라이맥스 부분이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 지점을 지날 때 사람들은 거의 동시에 탄성을 지릅니다. 저는 그런 지점에 집중했습니다. 놀이기구가 구조라면 그걸 타는 우리는 불가항력적으로 구조가 주는 기분을 느낍니다. 그 구간에선 희열을 느낄 수밖에 없지요. 즉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 구조가 나를 느끼게 만들고 선택하게 만드는구나! 외부적 요인에 의한 내면의 어쩔 수 없는 반응이나 선택들이 저의 관심이었고 그렇게 진행했던 작업의 방식에서 법관의 의자라던가 오브제들을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동연: 놀이기구에서 법관의 의자라, 흥미로운데요. 법관의 의자를 사용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요? 법관의 의자가 작가님의 어떠한 관심사와 어떻게 만나게 되나요?

 

법관 의자와 같은 오브제를 고르면서 오브제가 원래 가지고 있던 이전의 기능이나 사회적 의미가 꼴랴쥬되어 시스템을 더 구체적으로 은유하게 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작업에 테이블을 사용해야 한다면 식탁, 사무용 테이블, 책상은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른 재료인 것이죠. 저는 이미지를 만든다기 보다는 오브제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의미를 꼴라쥬해서 만들어지는 논리에 거의 대부분의 작업 시간을 할애 합니다.

 

혹은 몇 군데에서 진행했던 ‘절대적 기준에 대한 내면의 불가항력적 엔트로피(entropy)’ 라는 작업은 바닥부터 천정까지 쌓아 올린 생활용품 기둥작업이 있는데 물리적 엔트로피 이론을 적용한 작업이었습니다. 분명히 물리적으로는 안정된 상태에 놓여있지만 붕괴직전의 상태에서 유지되는 안정이기 때문에 내부는 온통 불안정으로 가득 차있죠. 이렇듯 표면과 내부의 차이는 결국 조그마한 내외부적 요인에 의해서도 붕괴됩니다. 저는 그런 형식적 태도를 통해 안정된 구조 속에 담긴 불안정한 상태라던가 불균형한 상태를 드러내기를 바랬습니다. ‘우리가 되는 방법’에서는 수집한 오브제 60여 개의 무게를 일일이 측정해 평균무게를 산출하고 그 평균무게에 맞춰 모든 오브제들을 재단하여 다시 재조합해 모두 똑같은 60여 개의 오브제로 구성시켜 공정한 상태로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구조를 시뮬레이션 하기 위해 시작한 오브제작업들은 이제는 그것들이 지닌 사회적 맥락들을 이용한 작업으로 발전되었습니다.

 

고동연: 그런데 어떻게 정교하게 변형된 오브제로 옮아가게 되셨는지요? 작가님 작업을 볼 때 신기했던 점이 오브제를 쉽게 어떠한 힘도 들이지 않고 선택하시다가 나중에는 아예 공산품과 같이 매우 정교한 오브제를 직접 만들어가는 식으로 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편평한 면을 갈아서 유리의 표면을 모방한다든지 닭고기로 야구공을 만든다든지, 어떻게 보면 작가의 노동을 사용해서 특이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산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상당히 지루하게도 보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계기로 정교한 공산품의 생산이나 변형과정에 관심을 기울이시게 되셨는지요?

 

이완: 제가 법관 의자를 고를 때도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데에 대해서 분명히 쾌감을 느꼈습니다. 기능이나 문맥이 바뀌어 버리니까요. 아, 재미있는 요소들이 있구나 해서 그 다음에 발전시킨 것이 책으로 만들어진 운동기구였습니다. 전시장에 물리적으로 근력을 키우는 도구가 등장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변형된 오브제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아, 그러면 책을 바꾸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결정하는 것 자체를 변하게 하는 것이구나. 그러한 것을 발견하게 되니까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책이 가지고 있는 어떤 사회적 가치가 변하는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유사한 작업들을 했습니다. 무게가 같은 한영사전과 영한사전의 내용을 바꾸어 버리고....

 

고동연: 특히 영어가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의 무게감을 생각하면 상당히 쾌감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였겠네요.

 

이완: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오브제가 지니는 사회적인 맥락, 상징성 등등에 관심을 많이 두게 되었는데 서로 다른 것들을 결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반복하게 되니까 점점 힘들어지더라고요. 한 오브제가 이런 상태로도 해석이 되고 저런 상태로도 해석이 되고 너무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1년 정도 영상작업을 하다가 다시 선택한 것이 닭고기를 야구공으로 변형시킨 작업이었습니다. 어떤 생산물의 과정을 변형시키는 것이지요. 즉 야구공과 닭고기가 있으면 그 결과와 과정을 합쳤어요. 야구공이라는 이미지에 닭고기의 내용물을, 이런 식으로요. (슈퍼마켓에서 파는 닭고기 한 팩과 야구공의 무게가 같다는 데에 착안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슈퍼마켓에서 파는 닭고기가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그 결과를 오브제로 만들었습니다.

 

고동연: 그러니까 작가님의 방식으로 주어진 오브제의 단순 기능뿐 아니라 그것이 변형되어서 도달해야 하는 목적도 변화시키고자 하신 것이네요? 그럼 닭고기를 야구공으로 변형시킨 것이 작가님이 말씀하시는 ‘폭력적인’ 사회적 구조나 맥락 등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것과 어떻게 연관되는지요?

 

이완: 슈퍼마켓에서 가면 음식물들을 보면 우리는 포장된 결과물들만을 보게 되잖아요. 배추밭에 가서 정말 어떻게 배추가 만들어지는지 과정을 보고 구입하지는 않지요. 실제로 마트에서 마주하는 수 없이 많은 카테고리의 진열장에 놓인 상품들은 모두 엄청나게 복잡한 구조의 집합을 보여줍니다. (제가 똑 같은 마트를 4년째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구입한 과자 뒷면엔 이런 내용이 쓰여 있더군요. ‘미국산 소맥분 70%, 호주산 밀20%, 팜유 말레이시아산, 정백당 중국산, 제조사: 농심, 원산지: 중국 ....’ 하나의 제품에 여러 나라의 국가 대 국가의 관계부터 지리적 요인과 특수성 문화까지... 거대한 구조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죠. 세상은 너무나 정교하고 구체적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것을 별 다른 의심없이 이용하죠. 무엇을 선택하든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제시받은 몇 가지의 보기들 중 하나를 선택할 뿐입니다.

 

고동연: 그럼 닭고기로 야구공을 만드는 작업은 사회비판적인 작업인가요?

 

단순히 비판적인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닭고기를 이용해 야구공을 만든다던가 쇠고기를 가공해 나무처럼 보이는 목공용 재료 등을 만들어왔습니다. 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오브제의 이미지로 표면적 기호를 확정 지었지만 내부의 구조와 본질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산해 왔습니다. 그런 허무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들은 우리가 시스템에 동의하고 구조에 순응해 가는 모습들에 대한 제 시각이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정치나 이념에 대한 문제들에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언론이나 메스미디어를 통해 알게 되는 정보들이나 사실들을 통해 표면적으로는 주변상황을 인식하고 정세를 알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부적으로는 무언가에 계속 익숙해지고 정해진 선택으로 유도됩니다. 우리는 지적 광신주의나 지적 범죄의 대상이 되어갈 수도 있습니다. 저는 비관론자가 아닙니다. 수면아래 진실을 보여주기를 원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가려진 내부를 들어내는 작업에 머물러 왔지만 앞으로의 작업은 더 세부적으로 구조를 보여주거나 시뮬레이션 할 계획입니다. 저에게 오브제 자체는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이 흘러온 과정과 그것이 지닌 의미를 통해 모든 개인들이 결국 구조를 관장하는 거대한 집단의 목적이 되어간다는 점을 오브제를 관통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고동연: 또 하나의 궁금한 점은 작가님이 다루시는 오브제들이 결국 음식물과 연관된다는 점입니다. 작가님이 제가 요약하자면 ‘선택의 허상,’ 이나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구조나 사회 체계’등에 대한 관심을 다루는 과정에서 굳이 음식물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이완: 작업에 음식물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은 결국 모든 가치의 시작은 먹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나의 목적이 발생하면 수단이 작용됩니다. 먹는다고 하는 개념은 자연적이고 절대적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거부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아울러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먹는 것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예전의 먹는다는 개념에선 시스템의 관리자적인 역할과 소비자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균형을 이루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포장을 뜯고 데우거나 단순히 조리해 먹는 과정이 먹는다는 개념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먹는 모든 음식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알지 못하며 그럴 필요성도 못 느낍니다. 저는 시금치가 원래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닭을 잡아 털을 뽑는 법도 모릅니다. 우리가 점점 더 몰라도 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거대한 구조가 이끄는 방향에 동의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트라고 하는 곳의 엄청난 정교함을 일일이 말 할 것도 없이 우리는 농사를 짓거나 닭을 키우기 위하여 시간과 정성을 들이지 않고도 단돈 몇 천원에 맛있는 닭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즉 거대한 구조는 개인이 먹는데 사용하는 노동력과 시간을 단축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고스란히 구조를 위해 사용하거나 광고를 시청하고 다른 소비활동에 사용하게 만듭니다. 시스템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하나를 소비할 시간을 단축시켜 여러 가지를 소비하게 만들고 그것의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식물이라는 재료가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사회적 구조와 체제의 강압적인 면을 잘 드러내어준다고 생각합니다.

 

고동연: 자 그럼, 이번 전시로 넘어가보지요. 아무래도 작가로서는 지나간 작업들을 결산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인데 이번 전시의 전체적인 개념은 무엇인지요?

 

이완: 이번 전시는 총체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작업들에서는 오브제를 개념적으로 다루며 사회 구조를 리얼리즘적 태도로 다뤄 왔습니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총체성이론과도 닮아있을 수 있는데, 학습성, 공유성, 통합성, 축척성, 변동성에 관한 이야기를 분열적으로 나열해 놓을 계획입니다. 전시에는 열 점 정도의 신작과 구작 세 점 정도로 구성되며 모두 구조와 기준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시대적 상징성이 무한 반복되어지는 영상들로 구성시킨 거대한 지하공간을 롤러스케이트장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개인을 획일화 시키고 자발적인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롤러스케이트는 적절한 수단이 됩니다. 롤러스케이트는 이념이나 경제구조 일수도 있고 우리가 공동으로 동의한 법이나 규범 그리고 도덕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논리적으로 알맞은 단어처럼 설치작업들을 배치 할 계획입니다.

 

고동연: 왜 롤러스케이트장인가요?

 

이완: 저한테 롤러스케이트는 획일화를 자발적으로 원하는 개인의 욕망을 유혹하는 하나의 상징성을 지닙니다. 제가 처음 롤러스케이트를 경험하던 시절을 떠올려 봅니다. 1990년 쯤 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한국은 88올림픽 이후 경제성장의 기초를 발판 삼아 다양성이 확장되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사람들이 원하는 가치의 기호가 다양해지고 구조는 그것을 충족시켜주기 시작한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롤러스케이트를 이용해 사람들을 매력적으로 획일화 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타겠다고 할 테니까요. 지금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과 같은 소셜네트워크는 사람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이야기가 자신의 기준에 비춰 훌륭하다면 팔로우를 하고 그를 지지합니다. 발전한 민주주의의 방식처럼 보이지만 시스템의 입장에선 모든 개인의 생각을 읽어내고 리서치 하는데 가장 손쉽고 좋은 도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의 획일화된 구조 위에 다양한 사람들을 올려놓으면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성향을 지녔으며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분석이 가능해 집니다.

 

우리는 점점 하나의 획일화 된 구조를 가지려고 합니다. 하나의 이념, 하나의 종교, 하나의 정의, 하나의 국가, 하나의 화폐, 하나의 윤리... 다양한 물감을 한데 섞으면 하나의 칙칙한 색이 되듯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다양성을 전체의 일반성 안으로 타버립니다. 나와 타인은 점점 비슷한 생각과 사고를 하고 점점 비슷한 것들을 좋아하게 되고 결국 정복된 하나의 인간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듭니다.

 

고동연: 아울러 이번 전시 제목이 “아, 순정”인데 좀 의아했습니다. 물론 제목 자체가 좀 특이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순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상주의적이고 순수한 이미지와 작가님이 기존 사회체계에 대하여 비평적으로 접근하여온 부분이 서로 상충된다고 여겨졌습니다. 전시 제목에 대한 설명이 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완: ‘아아, 순정’ 이란 제목은 원래 ‘아아, 무정’이란 빅토르 위고의 고전소설 의역판 제목에서부터 따 왔습니다. 제가 이전에 발견한 오래된 ‘레미제라블’의 번역판 제목이 ‘무정’이더라고요. 그래서 순정은 실은 무정과 유사한 느낌입니다. 일종의 불쌍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연관해서 우리가 허구를 동경하는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대개의 어른들은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는 어린이들에게 그것이 낭만적인 허구라는 점을 자녀들에게 이야기하기 부담스러워 합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허구를 실재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상상하는 것에 익숙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허구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완벽하게 부정하지는 않는 양상을 보입니다. 실존하지 않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여러 가지 결과들이 일시적이라도 안정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나 돈의 허구성을 예로 들 수도 있지만 정치나 이념을 가져다 끼워 놔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상상력과 집단의식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우리의 욕구는 어떤 상상적 이론이 이득이 되는 효과를 발휘해 그것을 공동으로 수렴하길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음악적 정서를 예로 들면 빌보드차트 상위랭킹에 오른 음악들은 그 정서를 공유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고유한 의미나 학습된 정서에 대해 반응하고 있는 사회적 인간형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통계학적으로 개인의 분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음악 이외에도 수많은 베스트셀러들을 분석하면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섬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거대한 확률의 통계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저는 총체성에 대한 시각을 타자화 하려고도 노력했습니다. 제 작업에는 구조적 입장에서 개인을 대상으로 한 시각도 존재하고 하나의 개인의 입장에서 부여받는 구조의 획일성이나 기준들에 대한 시각도 존재 합니다. 순정적이라는 말은 양가적인 의미를 지녔습니다. 이미 지나간 사랑에 대한 노스탤지어처럼 현실은 날카로운 칼바람 같은 상황이지만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과 같이 관점에 따라 순수하고 착한 욕망일 수도 있고 개인의 무력함을 신비화 시키는 단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고동연: 아, 그럼 ‘순정’이라는 단어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을 수도 있겠네요. 불쌍한 이들, 혹은 사회에 대한 측은지심과 동시에 거기에서 무엇인가 의미 있고 순수한 것을 찾고자 하는 작가의 바램을 동시에 담는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안 그런가요?

 

이완: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중적이란 것은 항상 매력적입니다. 사실 모든 것들이 다 그렇죠. 아, 순정이 아, 순정...(한탄조로 내려서), 혹은 아 순정!(올려서) 두 가지로 다 발음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저는 그래서 아 무정, 아 순정에 끌렸습니다.

 

고동연: 확실히 제가 이전에 접해온 작가님의 입장에서 좀 변화가 생겼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앞으로의 작업들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지금 계획 중이시거나 하시고 싶으신 작업은 어떠한 것인지요?

 

이완: 작업을 확장시키다 보니 경제구조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현재 경제학이나 국제 정세 등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을 중심으로 한 주변강대국의 관계에서부터 세계경제의 흐름과 환율 등으로 인한 개인과 문화적 변화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더군요. 지난번 선생님께도 설명 드렸던 노동과 경제구조에 대한 작업(마트에 파는 식료품의 원자재들을 최대한 직접 경작하고 수확해서 식료품을 직접 만들어보는)은 이미 시작했고 내년쯤 전시를 통해 보여드릴 것 같습니다.

 

고동연: 개인전 준비 기간 중 정말 바쁘실 텐데 인터뷰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이완: 인터뷰 하게 되어 영광이고 감사 드립니다.

© 2018. Koh, Dong-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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