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가의 데페이즈망 (Klega’s Dépaysement)

고동연

“어느 날 아침 그레고리는 악몽에서 깨어났고 꿈속에서 자신이 징그러운 곤충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꿈속에서 그는 바퀴벌레였고 크기도 사람 몸집만큼 컸다. 등을 대고 누운 상태로 그는 자신의 갈색 복부와 가는 다리들을 볼 수 있었다. 옆으로 몸을 돌리려고 애를 썼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등을 대고 누운 상태로 돌아 가버리곤 했다.” (카프카 <변신>중에서)[i]

 

클레가(Klega)의 작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변형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초기 오브제 작업에서부터 최근 수채화 작업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나 모티브들은 고정된 속성을 지니지 않는다. 상징적인 의미에서 정체성이 부재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하루 아침에 벌레로 변해버린 카프카의 주인공처럼 클레가의 오브제들은 끝없이 변화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실제로 그는 독일의 슈퍼마켓에서 발견되는 포장용기들을 사용하여 조각품들을 완성하였다. 그는 이들 작업에서 주어진 공산품을 예술적인 소재로 ‘변신’시킨다는 레디메이드 개념보다는 플라스틱이라는 소재 자체에 매료되었다. 플라스틱은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가 그의 고전 <신화들(Mythologies)>(1957)에서 일찍이 어떤 물건이던 만들어 낼 수 있는, 따라서 재료의 특수한 정체성이 부재하는 포스트모던적인 현대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개체로 규정된 바 있다.[ii] 실제로 얇은 스타킹으로부터 나사의 우주선 부품에 이르기까지 플라스틱이 사용되는 방식, 형태, 기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다양하다.

 

클레가의 애니메이션 작업에서도 모든 모티브들은 끝임없이 변모한다. 인간의 신체는 자연스럽게 하늘을 나르는 비행기로, 비행기는 땅에 곤두박질하는 로켓으로 이내 변신한다. 그리고 일종의 용광로와 같이 생긴 통의 내부로 날아다니는 인간의 형상이 곤두박질 치다가 다시금 튀어 올라와서 다른 형태로 변한다. 그야말로 그의 캐릭터들은 ‘플라스틱’하다. 유사하게 최근 수채화 작업에서도 이질적인 존재들, 예컨대 동물과 무생물에 해당하는 서로 다른 개체들이 혼합되어 있다. 남성의 성기를 의미하는 형태를 지닌 비행기, 그리고 끝 부분에 달려있는 음모, 감시 카메라가 달린 토끼의 안면, 고무장갑을 입은 멜빵바지,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 기계적이거나 인위적인 것과 물컹물컹한 것과 단단한 것, 서로 다른 요소들이 1920-30년대 초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우산과 재봉틀의 기이한 만남”을 연상시키듯이 결합되어 있다.

 

여기서 카프카의 변신이 그러하듯이,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선호하였던 데페이즈망(Depaysement) 수법이 그러하듯이, 변형, 장소로부터의 이탈은 ‘저항’의 또 다른 전략이다.[iii]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의 예에서와 같이 변형은 변형의 주체에게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한계상황이 되기도 하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타협하지 않고자 하는 주체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개체들이 본래적인 맥락에서부터 벗어나서 전혀 이질적인 요소들(동물과 기계)과 결합하게 되면서 개체가 지닌 본래적인 의미나 기능은 소멸된다. 팔인지 다리인지 모르는 형태는 팔처럼 자유자재로 뻗치지도 못하고 다리처럼 중력에 맞서 걷지도 못하게 된다. 어쩡쩡하게 서 있는 ‘팔/다리(Arm and Leg)’는 불안하고 애처롭게 보인다. 뒤집어진 채로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어서 방에 갇혀 있던 그레고리처럼 팔/다리는 그것의 주체로부터 분리되어 어정쩡하게 서 있다.

 

 ‘감시(Surveillance)’라는 테마를 지닌 드로잉에서 토끼, 혹은 정체가 불분명한 동물의 머리에는 감시 카메라가 달려 있다. 자신의 눈이 카메라의 눈으로 대치된 동물이 과연 본래대로 잘 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자세로 앉아서 카메라의 다리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동물의 모습은 측은해 보인다. 지팡이를 짚고 머리에 일종의 바가지와 유사하게 보이는 보호막을 쓴 인간의 모습, 거미의 몸을 지니게 된 토끼의 모습은 인간과 토끼의 기동성을 제한한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인간은 의미심장하게 ‘공동체적인 생각(Collective Thinking)’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볼 수 있는 통찰력(sight/insight)을 잃어버리고, 벌떼들이 유도하는 대로 나아간다. 마찬가지로 작은 거미의 몸에 한정된 토끼의 움직임과 그가 경험할 수 있는 세계는 축소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데페이즈망이 부정적인 상황만을 연출해내지는 않는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일상적인 개체들을 재맥락화(re-contextualize) 시킴으로써 전혀 새로운 기능과 역할을 발견하게 되고, 이로부터 새로운 미학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였던 것과 같이 기이한 형태들은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암시하거나 적어도 관객이 사회적인 통념으로부터 벗어나서 일상적인 리얼리티를 새롭게 보는데 기여하게 된다. (실제로 클레가의 주요 관심사 중의 하나인 물질주의 철학과 연관하여 현대 물리학의 발전은 물질을 더 이상 규정되고 한정된 본질적인 속성을 지닌 분자(atom) 의 차원에서 설명하는 데에서 벗어나서 분자의 분열(핵)이나 재배치, 변이 등의 다양한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힘을 얻게 되는 것으로 인식하는데 주력하여 왔다.[iv])

 

예컨대 녹용, 거북이 옆에 달린 경적이 조합된 형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말라비틀어진 녹용과 거북이와는 달리 경적은 일종의 위험한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멈추게 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발언의 수단이자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유사한 맥락에서 클레가는 어르신들이 사용하시는 보행기 위에 확성기를 달아 놓는다. 전혀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곳에 일종의 힘을 상징하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계들이 등장한다. 반면에 비교적 명확한 정치적 메시지가 등장하는 경우들도 있다. 작가는 ‘영국에서 폐품병을 쌓아 올려놓는 장소(bottle bank)’라는 단어를 말 그대로 해석하여 금융인(banker)이 술에 취해 병 옆에 엎드려 있도록 그려놓고 있다. 단순한 언어적 유희이지만 ‘신자유주의,’ ‘금융위기’ 이후 불편함의 대상이 되어버린 금융인의 이미지를 고려해볼 때 단순하게 보아 넘겨지기 어려운 사회적 문제를 암시한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환경문제를 암시하려는 듯이 방독면을 쓰고 있는 인물상 위로 국제기구 UN의 마크를 암시하는 원형이 그려져 있다. UN은 전지구화 시대에 가장 필요하면서도 정치적으로 무능한 국제기구로 인식되어 왔다. EU의 경우 알파벳 E 와 U의 형태를 결합한 방뇨하는 목발로 제시되고 있다. 한편으로 어딘가에 기댈 수 밖에 없는 불안정한 존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잉여물을 다른 곳에 뿜어대고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매우 정치적으로 비판적인 작업이다.

 

이와 같이 변형, 그리고 재맥락화는 사고의 이완,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 물건들이나 단어들의 결합은 궁극적으로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온 이미지나 단어의 의미들을 교란시키고 이미지나 단어들이 의미하는 사회적 가치 체계를 전복시키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교란의 메시지를 읽어내기 위하여 관객들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클레가의 조합이 쉽게 대중과 소통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작은 종이에 그려진 정적인 이미지들은 방안에 갇힌 그레고리 만큼이나 무능력해 보이고 자기 세계에 침몰해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영국 작가 마크 디온(Mark Dion)이 부시 행정부 8년간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작업에서 자족적이면서도 외부로부터 차단된 지식인의 <옥타곤(8각형) 방>을 설치한 것과 같이 클레가의 작업에서도 사회변혁의 의지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회의적이거나 냉소적이다.

 

그래서인지 클레가의 작업에서 간간히 보이는 사회적인 메시지들은 신선하면서도 동시에 낯설다. 과연 클레가의 경적의 경고음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인가? 작고 오래된 경적을 탓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들의 의식에 대하여 돌아보아야 하지는 않을까? 우리시대에 수많은 정보들과 이미지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것들이 어떻게 우리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 쉽게 설명하고 해결해내기에 현대 사회는 지나치게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비평가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이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수 많은 매체와 경쟁하느라 ‘참여’라는 이름을 단 순수미술들이 지나치게 분주했던 것도 사실이다.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설정하거나 관객을 대상으로 다양한 그들의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보다 강력한 미학적인 기재들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소극적인 클레가의 데페이즈망 드로잉은 낯설면서도 반갑다. 나아가서 필자는 반가우면서도 더욱 세심한 관심을 요하는 그의 작업을 가까이 보고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i] 프란츠 카프카, <변신> (전영애 역) (서울: 민음사 역), 2009.

 

[ii].[ii] Roland Barthes, Mythologies, trans. By A. Lavers (Farrar, Straus, and Giroux, 1972), pp. 118-119.

 

[iii].[iii] Romana Fotiade, André Breton :The Power of Language (Intellect Books, 2000), pp. 93, 129.

 

[iv][iv] Max Born, My Life and My Views (Charles Scribners’ Sons, 1968), p. 67.

 

 

Klega’s Dépaysement

 

“One morning, when Gregor Samsa woke from troubled dreams, he found himself transformed in his bed into a horrible vermin. He lay on his armour-like back, and if he lifted his head a little he could see his brown belly, slightly domed and divided by arches into stiff sections. The bedding was hardly able to cover it and seemed ready to slide off any moment. His many legs, pitifully thin compared with the size of the rest of him, waved about helplessly as he looked.[1][1]” From Metamorphosis by Franz Kafka

 

Metamorphosis is a keyword that runs through all of Klega's work. Or, to put it more accurately, the materials and motifs he has used from his early objects to his recent watercolors show no fixed continuity. In a symbolic sense, they can be said to lack identity. Like the protagonist in Kafka's story who wakes up one morning to find himself transformed into an insect, Klega's objects are placed in a state of endless transformation. Indeed, it was Klega who took items of packaging from a German supermarket and used them to create sculptures. What fascinated him in these works was not the concept of the ready-made – the transformation of available industrial products into artistic materials – but plastic itself, as a material. Early on, in his class Mythologies (1957), Roland Barthes branded plastic as symbolic of postmodern society because of its lack of specific material identity thanks to its ability to form any object.[2] The variety of methods of use, forms and functions of plastic, from the finest nylon stockings to components in a NASA space shuttle, is truly unrivalled.

 

All motifs in Klega's animations, too, constantly undergo metamorphosis. Human bodies transform naturally into aero planes; aero planes transform into rockets plunging into the ground. A human figure flies into a furnace-like container, plummets downwards, and then jumps back up again in a different form. Klega's characters, literally, are “plastic.” In his recent watercolors, in a similar way, we find mixtures of heterogeneous entities such as animals and inanimate objects. An aero plane in a form signifying a penis, with pubic hair growing at its tip; a rabbit sporting a surveillance camera where we would expect to find its face; a rubber glove wearing a pair of dungarees; the alive and the dead; the mechanical or artificial, the soft and the hard – such mutually different elements combined in a way reminiscent of the “meeting between an umbrella and a sewing machine” spoken of by surrealists in the 1920s and 30s.

 

Here, metamorphosis and deviation from place function as another form of resistance, just as they do in Kafka's novella and in the dépaysement technique that was a favorite of surrealist artists.[3] Metamorphosis, as in the case of Gregor Samsa, is of twofold significance for its subject. It is both an inevitable, restrictive situation and an expression of the subject's unwillingness to compromise within such a situation. Entities, for example, lose their intrinsic meanings or functions as they break free from their original contexts and are combined with completely different elements (such as animals with machines). A form that could either be a pair of arms or a pair of legs can neither stretch out freely like a pair of arms nor resist gravity and walk like a pair of legs. Standing ambiguously, “Arm and Leg” appears uneasy, pathetic. Like Samsa, stuck on his back in his room and unable to control his own body, “Arm and Leg” stands in a state of ambiguity, separated from its own subject.

 

In a drawing titled “Surveillance,” we see a rabbit or some other unidentified animal with a surveillance camera at the front of its head. Can an animal whose eyes have been replaced by those of a camera really run around properly? The sight of this animal, sat up straight as if playing the role of a set of legs for the camera, is touching. A human figure holding a walking stick and covering his or her face with some kind of gourd-like protective film, and a rabbit with the body of a spider limit the mobility of humans and rabbits. As “Collective Thinking” meaningfully suggests, a person who cannot see loses the capacity for insight ends up following swarms of bees. In the same way, the way a rabbit confined to the body of a small spider moves and experiences the world is inevitably limited.

 

Dépaysement, however, does not create only negative situations. Just as surrealists discovered completely new functions and roles by re-contextualizing everyday entities, intending thereby to convey new aesthetic messages, the odd forms that result can allude to socially critical messages, or at least help the viewer to break free of conventional social ideas and see everyday reality from a fresh perspective. (In fact, the development of contemporary physics, related to materialist philosophy, one of Klega's main areas of interest, has concentrated on moving away from explaining matter in terms of atoms with defined and restricted basic characteristics and instead explaining it as something that acquires new power as it undergoes processes such as atomic fission, relocation and modification.[4])

 

What, for example, is the meaning of combining a deer antler, a tortoise and an old car horn? A honker, unlike a withered antler and tortoise, can be interpreted as a means and symbol for the devoice making any political statements as a honker can capture people’s attention to dangerous things and suspend their paths. In a similar context, Klega places a honker on top of a Zimmer frame. We thus see two totally mutually unsuited devices, both of which symbolize power of a kind, in the most unlikely of places. Other works, by contrast, bear a comparatively clear political message. The artist drew an image of a drunken banker right next to a bottle and the word “bottle bank,” where the people usually deposited their used bottles in public. This may seem to be a word-pun, yet considering the uncomfortable image of banker under “neoliberalism” and recent financial crisis,” the image carries social message that is hard to ignore. In the same context, Klega paints a circle alluding to the logo of the UN above a figure wearing a gas mask, implying a reference to environmental issues. The UN is recognized as the most necessary, yet most politically impotent, international body in today's age of globalization. The EU, meanwhile, is presented to us in the form of a urinating crutch that incorporates the letters E and U in its figure. An unstable entity that is obliged to lean on something else for support on one hand is nonetheless spewing out its surplus somewhere else. This work can, according to how it is interpreted, carry a strong message of political criticism.

 

Metamorphosis and re-contextualization thus demand a loosening and changing of the ways in which we think. Ultimately, the combination of objects or words throws their conventionally accepted meanings into confusion and overturns the system of social values that they signify. Of course, viewers must exercise caution when interpreting such messages of confusion. Given this, it is hard to regard Klega's combinations as communicating easily with the general public. These quiet images painted on small pieces of paper, moreover, appear every bit as impotent as Samsa, stuck in his room, and give the impression of having sunk into a world of their own. Just as British artist Mark Dion created the work Octagon Room for an intellectual self-sufficient but cut off from the outside as part of a project to commemorate the eight years of the Bush administration, the will for social change is clearly present in Klega's work, but in a skeptical, cynical form.

 

Perhaps this is why the social messages we see occasionally in Klega's work are at once refreshing and unfamiliar. Will people really listen to the sounds coming out of his honker? Should we not, on the contrary, consider or own roles before we blame the small and outdated honker itself? Our age is one in which we live amid an abundance of ever-flowing information and images, but the structure of today's society is too complex for us to easily explain and resolve the way in which they affect our everyday lives. It is also true that, as critic Claire Bishop says, fine arts have been working too busy labeling themselves “participatory” in their efforts to compete with numerous other media. More powerful materials are being used in order to create unnatural situations or to elicit various emotional responses from viewers. Seen in this light, Klega's dépaysement drawings are unfamiliar but welcome. It occurs to me that I should look closer at his works, which are both welcome and demand more careful attention, and try to act upon the social messages they contain.

 

 


 

[1]  프란츠 카프카, <변신> (전영애 역) (서울: 민음사 역), 2009.

 

[2]   Roland Barthes, Mythologies, trans. by A. Lavers (Farrar, Straus, and Giroux, 1972), pp. 118-119. 

 

[3]  Romana Fotiade, André Breton: The Power of Language (Intellect Books, 2000), pp. 93, 129.

 

[4]  Max Born, My Life and My Views (Charles Scribners’ Sons, 1968), p. 67.

© 2018. Koh, Dong-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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